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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엔터테인먼트의 시작
- YG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한국의 4대 기획사로 불리고 있으나,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양현석 전 대표는 기획자로 변신하여 1996년 3월 자신의 이름을 따와 YG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다.
- 양현석은 뉴잭스윙 스타일의 첫 가수 킵 식스를 데뷔시켰으나, 초기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이후 MF 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하여 듀스의 이현도와 공동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지누션의 여러 곡들을 히트시키며 본격적인 제작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다.
양현석의 프로듀서 경력
- 양현석은 양군 기획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원타임과 와이지 패밀리를 출범시켰다.
- 가요계에서 YG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힙합과 R&B 등 흑인 음악 기반의 음악들을 제작하였다.
-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힙합 음악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며, 일부 멤버들의 랩 실력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YG의 뮤지션 중 한 명인 페리는 힙합 팬들에게 인정받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YG의 음악적 정체성
- YG 엔터테인먼트는 힙합과 R&B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 그러나 당시 한국의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YG의 음악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페리는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YG의 음악적 색깔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YG는 상업성과 예술성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였다.
페리의 등장과 영향
- 페리는 양현석의 솔로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그의 이국적인 외모와 컬러풀한 렌즈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 페리는 YG의 초창기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 비록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으나, 뛰어난 랩 실력을 선보이며 YG의 중요한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페리의 배경과 경력
- 페리의 본명은 페리 토마스 보자이며, 일본과 마리아나 제도 혼혈로 추정된다.
- 그는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90년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였다.
- 페리는 처음에 DJ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힙합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
- 지누션의 션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서의 음악적 경로가 시작되었다.
지누션과의 협업
- 페리는 지누션의 주요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 엔터테인먼트의 초창기 성장에 기여하였다.
- 원래는 지누션의 곡만 제작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 활동을 하려 했으나, YG 측에서 그의 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 페리는 NPC 3000과 같은 장비를 사용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YG의 음악적 색깔을 확립하였다.
- 그의 곡들은 한국 래퍼들의 곡보다 퀄리티가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리의 솔로 앨범과 성과
- 페리는 솔로 앨범 발매 전, YG의 세 번째 앨범 더 레인에 참여하였다.
- 이 앨범은 사이프레스 힐, Mobb Deep 등 유명 힙합 그룹과의 협업으로 화제가 되었다.
- 페리는 YG와의 의리로 인해 스커트 제의를 거절하였으며, 이후 YG에 남아 테디와 드래곤 등에게 프로듀싱 기법을 가르쳤다.
- 그의 솔로 앨범 바이 스톰은 강한 이미지를 힙합과 결부시켜 어둡고 강한 음악을 선보였다.
지드래곤의 데뷔와 성장
- 지드래곤은 13살의 나이에 YG 패밀리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페리의 타이틀곡 스톰으로 데뷔하였다.
- 지드래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신예로 주목받고 있었으며, 그의 데뷔는 한국 팝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페리는 지드래곤의 곡 드래곤을 프로듀싱하며 그의 음악적 성장을 도왔다.
- 지드래곤의 데뷔는 한국 힙합과 K-pop의 경계를 허물며 큰 영향을 미쳤다.
페리의 마지막 활동과 실종
- 페리는 2015년 계약 만료까지 YG에서 아무 활동이 없었으며, 조용히 YG를 떠났다.
- 그의 마지막 활동 이후,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으며, 가족들은 2010년부터 그의 소식이 없다고 전하였다.
- 국무부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 페리는 201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루머가 있으며, 그의 실종에 대한 여러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페리의 현재와 유산
- 페리의 조카에 따르면, 그는 2010년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으며,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 페리의 실종에 대한 여러 루머와 음모론이 존재하지만, 그의 음악적 유산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 YG에서의 활동과 그가 남긴 음악적 성과는 한국 힙합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페리가 원하는 삶을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그의 유산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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