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이야기/독서 일지 (요약)

[인간 본성의 법칙] Law01. 두려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실수다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 페리클레스 이야기 /요약) (Part.1)

by 치키치키박 2024. 9. 25.
728x90
반응형

 

로버트 그린 / 인간 본성의법칙 (THE LAWS OF HUMAN NATURE)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극복한다

 

우리의 삶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랑…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때로는 우리의 선택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이 감정에 의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감정을 극복하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감정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은 우리의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내려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부정적인 패턴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이성은 감정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능력으로, 무의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각'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내 느낌'이 아닌 '현실'에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성은 저절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성을 개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페리클레스 / Περικλῆς Pericles

 

두려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실수다

 

 

 

BC-432년 한 해가 거의 끝날 무렵이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대표들이 아테네 통치위원회를 찾아와 새로운 평화조약안을 제시 했다고 했다. 만약 안테네가 새로운 조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스파르타는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원수지간으로 어느 모로 보나 서로 반대편 극단에 속하는 국가였다. 아테네는 인근 여러 민주국가 선봉작 역할을 핶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인으로 구성된 여러 과두정 연합을 이끌었다.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부국(富國) 으로 지중해 상권을 꽉 잡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누가 봐도 군대에 의존하는 군국주의 (軍國主義) 국가였다. 그떄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전면전은 되도록 피하고 있어다. 전쟁에 패한 쪽은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아테네로서는 그동안 쌓아올린 부 (富) 와 민주주의 전통이 일거에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불가피해 보였고 일전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도시 전체를 휘감았다.

  

며칠 후 아크로폴리스가 내려다보이는 프닉스 언덕에서 민회 가 소집됐다. 사람들은 스파르타의 최후통첩을 놓고 어떻게 할지를 의논했다. 아테네민회는 모든 남자 서민에게 개방되어 있었고 이날은 1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프닉스 언덕으로 몰려들었다. 강경파들은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그들은 아테네가 선수를 쳐서 스파르타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육지전에서 스파르타 군대를 무찌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람들도 잇었다. 스파르타를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지들의 노림수에 완전히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온건파들은 얼마든지 평화조약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노출시켜 스파르타의 간덩이만 키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스파르타는 군비를 확자할 시간만 벌게 된다.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감정이 고조되면서 고성이 오갔으나 뾰족한 대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도 거의 저물어갈 떄쯤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낯익은 인물이 발언을 하려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페리클래스 이제 환갑을 넘긴 아테네의 원로 정치가였다. 페라클래스는 시민들의 총애를 받았고 그의 의견은 누구의 의견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그가 좀 특이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페리클래스는 정치가라기보다 철학자 에 가까웠다. 그가 어떻게 정계에 입문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토록 성공해 큰 권력자가 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는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게 없는 사람이었다.

 

 

페리클레스가 아직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초창기에 아테네 사람들이 선호하는 리더유형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가슴을 뛰게 만들고 설득력있는 언변에 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하는 리더를 좋아했다. 그런 리더는 전쟁 상황이 되면 위험을 감수하려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이 직접 군사작전을 이끌고 나가 영광과 관심을 독차지하려 했다.


그들은 지주나 군인, 귀족같은 민회의 특정파벌을 대변하며 정치생명을 이어갔고 해당 파벌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분열적인 정치를 했다. 몇 년마다 새로운 리더가 뜨고 졌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정치가가 권좌에 오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은 그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BC 463년경 페리클레스가 등장했다. 이후 아테네 정치는 다시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었다. 페리클레스의 첫 행보는 그야말로 이례적이었다. 알만한 귀족 집안 출신인 그가 당시 성장중이던 도시중하층민의 편에 섰던 것이다. 

당시에는 농부, 해군에서 노를 젓는 노꾼, 아테네의 자존심이던 장인 (匠人)등이 중하층민을 구성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민회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민주정에서 이들의 권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 

페리클레스가 이끌 게 된 이 계층은 하나의 작은 파벌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대다수였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렇게 크고 무질서한 집단을 통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페리클레스가 그들의 권력을 키우는 일에 워낙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차츰 이들의 신뢰와 후원을 확보해 나갔다.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페리클레스는 민회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고 아테네 정치를 바꿔나갔다. 그는 아테네가 민주제국을 확장하는 것에 반대했다. 아테네인들이 욕심을 부리다 통제력을 상실할까 걱정한 것이다. 그는 제국을 단결하고 기존의 동맹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전쟁이 벌어져 직접 장군이 되었을 때는 인명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군사작전보다는 책략을 써서 이기려고 했다. 많은 이들의 눈에 페리클레스의 이런 행동은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들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아테네는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에 들어섰다. 더 이상 불필요한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날 일도 없었고,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순조롭게 돌아갔다.

그렇게 점점 쌓여가던 재정으로 페리클레스가 벌인 일이야말로 시민들의 놀람과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남는 재정으로 정치적 환심을 사는 대신, 대규모 공공건축사업을 벌였다. 사원과 극장 콘서트홀을 발주해서 아테네의 모든 장인이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가 선호했던 건축 양식은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었는데, 질서 정연하면서도 매우 기하학적이고 거대하면서도 눈으로 보기에 편안했다. 그가 발주했던 가장 큰 프로젝트는 파르테논 신전과 그 안에 들어갈 12미터짜리 아테나 여신상건설이었다. 

 

테나여신은 아테네의 수호신으로 지혜와 실용적 지식을 상징했다. 아테나 여신은 페리클레스가 진작시키고 싶은 모든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였다.

페리클레스는 혼자 힘으로 도시국가 아테네의 정신과 외양을 모두 바꿔 놓았고, 아테네는 과학 과 예술의 전 분야가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페리클레스의 여러 면모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부분은 절제되고 품위있는 그의 화법(法)이었다. 그는 결코 화려한 수사법(法)을 늘어놓는 법이 없었다.

대신에 빈틈 없는 논리로 청중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였다. 페리클레스가 발언을 하면 사람들은 그의 흥미로운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 면밀히 귀를 기울여야 했다. 차분하면서도 호 소력이 짙은 화법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전례없이 오랫동안 권력을 누렸다. 몇 년이 지나도 몇 십 년이 지나 도 그는 권력을 잃지 않았고, 부산떨지 않고 그만의 조용한 방식으로 아테네 곳곳 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 페리클레스에게도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오래 권좌에 앉아 있는 그를 드러나지 않은 독재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전통에도 구애되지 않는 그를 무신론자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그렇게 특이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이 낳은 성과만큼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이 날 오후 민회에서 연설을 하려는 중이었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관해 페리클레스만큼 큰 무게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군중들 사이에 ‘쉬쉬’ 소리가 들렸다. 다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잔뜩 기대를 품은 채 기다렸다.

마침내 페리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제 생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펠로폰네소스인들에게 그 어떤 것도 양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쟁을 벌이자는 주장에 동조할 때는 더할 나위없이 열정적 이던 사람들도 막상 그 말을 실천할 때가 오면 그런 열정은 오간데 없어지겠죠. 사람의 마음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니까요.”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이견은 중립적 중재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스파르타 의 일방적 요구에 응한다면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런 요구를 하나둘 들어 주다 보면 끝도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육지에서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페리클레스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전투를 제안했다. ‘방어적 국지전’이 그것이었다.

그는 인근 주민 모두를 아테네 성벽안으로 불러들이자고 했다. 스파르타인들이 와서 우리에게 싸움을 건다면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라. 그들이 우리 땅을 유린한다면 얼마든지 그러도록 내버려두라. 우리는 미끼를 물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들과 육지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 필요한 물자는 바다를 통해 공급받으면 된다. 우리는 해군을 이용해 그들의 해안마을을 급습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스파르타인들은 전투가 제대로 벌어지지 않는 것에 차츰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군대를 먹이고 필요한 물자를 대다 보면 스파르타인들은 돈이 떨어질 것이다. 스파르타의 동맹국들은 내부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스파르타 내부의 전쟁 지지파들은 신임을 잃을 테고, 지속 가능한 진짜 평화에 대해 의견이 모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에서는 인명손실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페리클래스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밖에도 이유는 많습니다. 결국에 가면 우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제국을 확장하지 안했다고 굳게 마음먹어야 하고, 무리한 어떤 일로 추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두려

운 것은 상대의 전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실수입니다."그의 제안은 너무나 낯선 내용이어서 격렬한 토론을 촉발했다. 강경파도,온건파도, 페리클래스의 계획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지혜로 정평이 난 페리클래스의 명성이 슬리했고. 그의 전략은 승인됐다. 몇 달 후 운명의 전쟁 이 시작됐다.

 

초반 상황 전개는 페리클래스의 예상을 크게 빛나갔다. 전쟁이 자꾸 늘어져는데도 스파르타와 그 동맹군의 좌절하기는커녕 더 대담해졌다. 오히려 낙담한 것은 자신들의 땅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며 보복조차 할 수 없는 아테네인들이었다. 그러나 페리클래스는 아테네인들이 인내심을 잃지만 않는다면 결국에는 자신의 겨획이 성공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전쟁이 2년째 접어들었을 떄 예상치 모한 변고로 인해 상황은 급변하고 말았다. 아테네에 강력한 전염병이 발생했던 것이다. 성벽 안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다 보니 병은 급속도로 확산해고, 시민 3분의 1이 죽고 군인의 수는 급가했다. 본인도 전염병에 걸린 페리클레스는 병상에 누워 죽어가면서 최악이 악몽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아테네를 위해 수십 년간 이뤄놓은 것들이 일순간에 와해 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단체로 헛소리를 떠들더니 결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만약 페리클래스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든 아테네인들을 진정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스파르타가 받아들일 만한 평화 협상을 이끌어내거나 자신의 방어 전략을 수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늦은 이야기였다.

 

아테네인들은 리더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전엽병을 페리클래스의 탓으로 돌리고 그의 전략이 형편없었다고 성토해다. 아테네인들은 더 이상 인내심도 자제력도 발휘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오래 살아고 그의 아이디어는 이제 보니 늙은이가 내놓은 생각에 불과했다. 페리클래스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사랑은 마음으로 변질됐다. 페리클래스가 사라진 지금, 파벌은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전쟁파가 인기를 얻었다 전쟁파는 스파르타에 대한 앙심이 커져갔던 아테네인들의 마음에 군불을 지펐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전염병 사태를 빌미로 입지를 더 강화하고 있었다. 아테네의 강경파들은 오히려 공격을 통해 우리가 다시 주도권을 쥐고 스파르타를 뭉개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아테네인이 그 말에 큰 안도와 함께 통쾌함을 느꼇다.

 

도시가 전염병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자 아테네가 다시 우위를 점하기 샂했고 스파르타는 강화를 요청해왔다. 적을 완전히 섬멸하고 싶었던 아테네는 호랗호락 응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스파르타는 다시 힘을 회복하더니 오히려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런 식으로 엎치락뒤치락 한 해, 한 해 지나갔다. 양측 군사 모두 날로 폭력적이 되었고, 비통함은 계속 커져갔다. 한번은 아테내가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빌로스 섬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빌로스가 항복하자 아테네인들은 투표를 거쳐  빌로스의 성인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았다. 이런 잔인한 일은 페리클래스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수없었다.

 

 

그렇게 끝없는전쟁이 지속되던 BC 415년이었다. 아테네의 리더 몇 명이 스파르타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했다. 당시 시칠리아 섬에서는 도시국가 시라쿠사가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에 반 드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있던 중요한 동맹국이었다.

만약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아테네가 원정군을 파견해 시라쿠사를 손에 넣는다면 두 가지 이점이 생기는 것이었다. 첫째, 시라쿠사가 아테네 제국에 합류 할 것이고 둘째, 스파르타는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더 이상 구하지 못할 것이다. 아테네 민화는 표결을 통 해 적정 규모의 군대와 함께 배 60척을 보내 이 목표를 수행하기로 했다.

이번 원정 임무를 부여받은 지휘관 중에 니키아스라는 자가 있었다. 니키아스는 이번 작전의 타당성에 큰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에게 아테네가 시라쿠스의 병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니키아스는 일이 잘못됐을 경우에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그려 보았다. 확실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원정대 규모가 이보다 훨씬 더 커야 했다. 니키아스는 계획을 무산시키고 싶었으나 그의 의견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원정대 규모가 훨씬 더 커야 한다면 더 큰 원정대를 보 내자! 배를 100척 보내고 군대 규모도 곱절로 늘리자. 아테네인들은 이렇게 하면 이 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들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며칠간 아테네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길에서 시칠리아 지도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다들 아테네에 재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스파르타가 끝내 굴 욕을 당하는 모습을 고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배들이 출항하던 날은 성대한 축제일 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경외심을 자아 내는 광경이 펼쳐졌다. 눈길이 닿는 저 끝까지 거대한 함대가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선박에는 아름다 운 장식들이 달려 있었고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장병들이 갑판에 빼곡히 들어서 있 었다.

몇 달이 지났다. 아테네인들은 원정군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병력 규모의 우 위만으로도 아테네군은 시라쿠사를 완전히 포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함락 직전 스파르타에서 지원군이 도착했고 지금은 오히려 아테네군이 수세에 몰려 있었다. 니키아스는 이렇게 역전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서신을 민회에 보냈다. 그는 작 전을 포기하고 아테네로 회군하든가 아니면 지원 병력을 급파해야 한다고 했다. 

패배의 가능성은 상상조차 해보고 싶지 않았던 아테네인들은 표결을 통해 지원 군을 파견하기로 했다. 두 번째 파견한 함대도 첫 번째와 거의 맞먹는 대규모 병력이 었다. 이후 몇 달간 아테네인들 사이에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긴장감이 형성됐다. 이제 병력을 곱절로 보냈으니 절대로 질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테네 해안가 피레에 푸스라는 마을의 이발사가 손님으로부터 소문을 하나 들었다. 아테네 원정군이 전투에서 완패해 선박과 병력이 전멸했다는 소식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아테네 전체로 퍼져 나갔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지 만 사람들은 서서히 공황 상태에 빠져 들었다. 일주일 후 소문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테네는 이제 망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배도, 병력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아테네인들은 기적처럼 버텨냈다. 그러나 시칠리아전의 패배로 인해 이후 몇년 간 전쟁의 추는 완전히 스파르타 쪽으로 기울었고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가 공격해오는 대로 이리저리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러다 결국 BC 405년 아테네는 마지막 패전을 끝으로 스파르타가 내민 평화조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조약의 내용은 아테네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오랜 세월 빛나던 아테네의 영광도 민주주의로 이끌어 온 위대한 제국도, 페리클레스 시대의 황금기도 이제는 영영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테네인들이 지니고 있던 가장 위험한 감정, 즉 공격성, 탐욕, 자만심, 이기심을 눌러주던 남자는 이미 무대를 떠났고, 그의 지혜도 잊힌 지 오래였다. 

.

 

 

해석

정치 생활 초창기에 페리클레스는 당시의 정계를 조망하며 다음과 같은 현상을 알아차렸다. 아테네의 모든 정치인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현실적 목표를 갖고 있고 거기에 도달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파벌을 위해 싸우고 권력을 키우려 한다. 아테네의 군대를 자주 전투에 끌어들이고 종종 승리할 때도 있다. 

제국을 확장해 더 많은 돈을 유입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정치술수가 역풍을 맞거나 전쟁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이유를 갖고 있다. 언제나 정적을 탓하고 필요하면 신(神)들까지 비난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토록 이성적이라면 그들이 내놓는 정책은 왜 이토록 지리멸렬하고 혼란만 가중시킨단 말인가? 왜 아테네는 이토록 엉망진창이고, 민주주의가 이토록 위태롭단 말인가?

왜 부패가 만연하고 늘 격변의 연속이란 말인가? 답은 명확했다. 아테네인들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아테네인들은 이기적이고 영악하다. 그들은 권력이나 사람들의 관심, 돈과 같은 것을 바라는 저급한 감정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주 전 략적이고 영리해질 수도 있지만, 그들의 술수는 지속될 수 없고 민주주의 전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어떻게 하면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감정이 장악한 무대에서 정말로 이성적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전무후무한 내용이었고, 결과를 보더라도 대단히 강력했다.

그의 해결책이 우리에게도 이상향이 되어야 한다. 페리클레스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무언가를 숭배해야만 했다. 우리는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는 다른 그 무엇보다 높게 평가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이었고 가족이나 부족, 신 혹은 국가인 사람도 일부 있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에게 그 무언가는 고대 그리스어로 ‘누스(nous)’, 즉 ‘지성’이었 다.

누스는 우주를 관통하는 힘으로서의 미와 질서를 창조했다. 인간의 마음은 당연히 이 질서에 끌리도록 되어 있다. 인간의 지능이 곧 누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가 숭배하는 지성이 현현(現)된 모습, 그게 바로 아테나 여신이었다.

아테나는 말 그대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아테나(Athena)’라는 이름 자체가 그 점을 말해준다. ‘신(theos)’과 ‘정신(out)’이 합쳐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나는 특정한 형태의 누스를 대표하는 뜻으로 의미가 변화했는데, 뚜렷이 실용적이고 여성적이며 세속적인 누스가 그것이었다. 영웅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테나는 영웅에게 평정심을 불어 넣고 승리와 성공에 필요한 완벽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으며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아테나가 찾아 온다는 것은 영웅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고 아테나의 정신은 위대한 장군이나 최고의 예술가, 발명가. 사업가들을 인도해 주었다. 

아테나의 영향 아래에 있을 때 사람들은 가장 또렷이 세상을 볼 수 있었고 그 순간 취해야 할 딱 맞는 행동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생산적이고 번창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거나 단결이 필요할 때 아테나의 정신을 소환했다. 그러니까 아테나는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물 즉 이성(理性)’을 상징했다. 이성만으로도 인간은 마치 신계의 지혜를 가진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그의 내면에 있는 아테나를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부터 완벽하게 정복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감정은 우리를 내부로 향하게 만들어 누스나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나 불안을 계속 곱씹는다.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그 감정들이 마치 렌즈처럼 세상과 우리의 중간을 막고 서서 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감정은 우리의 시야를 흐린다. 페리클레스는 절대 순간적인 감정에 반응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 다. 강력한 감정의 영향을 받고 있을 때는 결코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려 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느낌을 분석했다.

불안이나 분노를 느낄 때 그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감정을 정당화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러면 그 감정들은 중요성을 상실했다. 

종종 민회의 토론이 과열되면 페리클레스는 물리적으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집으로 물러날 때도 있었다. 집에서 그는 며칠이고 혼자 지내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러면 서서히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나의 기준위에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그 하나란 바로 ‘아테네를 위해 더 이로운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테네식이 갖는 우월성을 믿게 만들어 그들을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준을 정해 두자 그는 자존심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절로 중하층민의 참여를 증진하고 그들의 권력을 키우는 데 매진하게 됐다. 물론 이 전략은 페리클레스 자신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되기 쉬웠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영달이 줄어 들더라도 전쟁을 가급적 줄여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여러 업적중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아테네를 탈바꿈시킬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사업을 심사숙고하는 과정에서 페리클레스는 마음을 열고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와 대안에 귀를 기울였다. 정적(政敵)이 내놓은 의견이라해도 배척하지 않았다.그는전략을 하나 수립할 때도 생각할 수있는 모든결과를 숙고해 본 후에 이 결정을 내렸다.

페리클레스는 늘 차분한 정신과 열린마음으로 정책을 입안했고 그렇게 생각해 낸 정책들로 역사적으로 진정한 황금시대중 하나를 열었다. 한 사람의 이성적 정신이 도시 전체를 물들였다. 그가 무대를 떠난 후 아테네에서 벌어진 일들을 상기해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 지 알수있다. 시칠리아 원정은 페리클레스가 줄곧 반대해 온 모든 것을 대변하는전쟁이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숨은 욕망이 결과도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내린결정이었다.
명심할 사항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이성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있는 능력이 아니다.

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는 능력이다. 아테나의 목소리란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에 존재하는 더 고차원적인 어떤 능력을 나타내는 말에 다름 아니다. 차분하고 집중된 순간에 느껴보았을 어떤 잠재력, 오랜 심사숙고 끝에 떠오른 완벽한 아이디어같은 것이다. 지금 당신이 그 고차원적 능력에 접속되지 못한 이유는감정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회에 참석한 페리클레스처럼 우리도 남들이 불러 일으키는 수많은 극적 감정의영향을 받는다. 남들이나에게 던지는것들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흥분과불안, 초조함의 파도를 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집중’을 어렵게 만든다.

주의력이 이리저리 분산되고 의사결정의 토대가 될 이성적 기준조차 없다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간단한 결심하나면 즉시 이런 상황을 바꿀수있다. 내면의 아테나를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된다. 그렇게되면 이성이 당신의 최고가치가 될테고 당신을 이끌어줄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끊임없이 당신의 생각과 의사결정에 침투하는 감정들 을살펴보는 것이다. 자문하는 연습을 하라. 나는 왜 이렇게 화가나고 분한마음이 드는가?

관심을 얻고 싶은 이 끝없는 갈증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그렇게 꼼꼼히 확인하다보면 결국은 당신을 틀어쥐고 있는그 감정의 손아귀에서 풀려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던지는 화두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을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감정은 생각을 협소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이나 관심같은 즉각적 욕망을 해소할 한 두가지 아이디어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낸 아이디어는 흔히 역풍을 불러온다.

그러나 차분한 정신을 갖게된다면 얼마든지 폭넓은 해결책과 대안을 생각할 수있다. 더 오래 심사숙고한 후에 행동할테고, 한번 세운 전략도 재평가할것이다.

아테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 질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옹졸한 감정들을 퍼부어도 이성의 힘을 발휘해 한 눈 팔지 않고 생각에 집중할 것이다. 운동선수가 훈련을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듯이 당신의 생각은 더 유연해지고 탄력적으로 변할 것이다. 침착하고 분명하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해법과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마치 두 번째 자아가 바로 옆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하나는 분별있고 이성적인 자아, 다른 하나는 꼴통 짓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렇지만 가끔은 너무나 재미난 자아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재미난 일을 몹시도 저지르고 싶어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이유는 모른다. 마치 내가 내 뜻을 거스르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데도 자꾸만 저지르고 싶어진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미성년》 중에서


 

 

 

 

 

요약


페리클래스의 리더십


    - 페리클래스의 정치적 영향력

        -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끈 페리클래스
        - 민회에서의 중요한 입지

 

    - 전쟁에 대한 절제된 전략

        - 방어적 국지전 전략 제안
        - 스파르타와의 전쟁 상황

 

    - 시라쿠사 원정군과 패배

        - 시라쿠사 원정군의 계획
        - 패배로 인한 아테네의 위기

 

    - 아테네의 최후 평화조약

        - 스파르타에게 내민 평화조약
        - 아테네의 영광과 제국의 종말

 

 

 

 

 

해석

 

    페리클레스의 정치 생활 초창기


- 아테네의 정치인들의 현상
  - 자신의 이성적 목표와 계획을 갖고 있다고 생각
  - 정치적 파벌을 위해 싸우고 권력을 키우려 함
  - 군대를 전투에 끌어들이고 승리도 있음

 


아테네의 부패와 위태로움

- 정책이 혼란만 가중시키고 지리멸렬하다는 문제
- 아테네가 엉망진창이고 민주주의가 위태로움
- 부패가 만연하고 격변의 연속

 


페리클레스의 해결책


- 인간은 무언가를 숭배해야 함
- 페리클레스가 숭배한 것은 '누스', 즉 '지성'
- 아테나 여신을 숭배하여 이성적 정신을 개발

 


페리클레스의 노력과 결과


- 감정을 정복하기 위한 훈련과 노력
- 감정에 대한 분석과 이성적 판단
- 아테나를 위해 더 이로운 것을 기준으로 정책 입안
- 중하층민 참여 증진과 아테나의 권력 키우기에 노력

 


결론


- 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는 능력
- 감정에 대한 자문과 분석을 통해 내면의 아테나를 개발
- 차분한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 낸 정책으로 황금시대를 열었음
- 이성적 판단과 창의적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

 

 

 

 

 

 

참고문헌/원글 내용 : https://www.dentalnews1.com/news/articleList.html?page=3&total=67&box_idxno=&sc_sub_section_code=S2N134&view_type=sm /덴탈뉴스  (원글:인간 본성의 법칙)

 

 

 

책구매 링크

yes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75749811

 

인간 본성의 법칙 - 예스24

“인간 본성을 간파하는 것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인간 내면의 충동과 동기를 파악하는 가장 지적인 안내서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람들과의

www.yes24.com

 

교보 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7018

 

인간 본성의 법칙 | 로버트 그린 - 교보문고

인간 본성의 법칙 | 500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서!《권력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이 우리 안에 숨겨진 인간 본성에 관한 18가지 법칙을 통찰해내며 평범하고, 이상하고,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