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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독서 일지 (요약)

[인간 본성의 법칙] Law02.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바꾼다 (인간은 누구나 관심에 목마르다 ) PART 1 요약

by 치키치키박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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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린 / 인간 본성의법칙 (THE LAWS OF HUMAN NATURE)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바꾼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과 교감하고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도구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감’이다. 
잘 개발해 적절히 활용한다면 우리는 남의 생각과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반발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렇게 유용한 도구의 칼날이 무뎌지는 이유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자기 안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다. 우리에게 인생최대의 과제는 이 자기애를 극복하고 감수성을 내안이 아닌 밖으로 타인을 향해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중의 해로운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만 그들이 꾸며낸 연극에 휘말리거나 그들의 시기심에 독살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나르시스트 (narcissist)

 

 

인간은 누구나 관심에 목마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관심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우리는 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형성하는 유대관계에 나의 생존과 행복이 걸려 있다. 남들이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은 없다. 

관심 중에는 실제 몸으로 느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나의 존재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런데 관심에 대한 욕구는 또한 아주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타인이 내게 주는 관심에 따라 우리는 그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끼는 나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관심이 어찌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못할 일이 없을 정도다.

당신이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 첫번째 동기는 언제나 관심에 대한 욕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심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려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다함께 나눠 갖기에는 관심이 ‘너무 적다’는 문제 말이다. 집에서는 형제자매와 경쟁해야 하고, 학교에 가면 같은 반 친구들과 직장에서는 동료와 경쟁해야 한다. 남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순간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 가버린다. 사람들은 자기 문제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놓고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나를 멸시하는 사람도 있다. 심리적으로 혼자라고 느끼거나 버려졌다고 느낄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이목을 끌고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을 두 배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고 종종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너무 애쓰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관심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남들이 나를 끊임없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관심을 갈망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딜레마에 직면했던 우리는 꽤 쓸만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아란 우리를 위로해주고 ‘내면으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다.

자아는 나의 취향과 의견, 세계관, 가치관으로 구성된다. 자아상을 구축할 때 우리는 자신의 긍정적 측면은 강조하고 결점은 핑계를 대서 멀리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자아상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지면 남들이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떻게든 우리가 그 차이를 인지하게 만들테고 그렇게되면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정선에서 조정이 이뤄진다면 결국 우리 손에는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자아가 생긴다. 

그때부터 우리의 에너지는 내부를 향한다. 내 관심의 중심은 내가 된다.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나는 혼자라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바로 이 자아에게 돌아가나 자신을 달랠 수 있다.

확신이 서지 않고 기분이 우울할 때 자기애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며 심지어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준다. 
자아상은 마치 보일러의 온도조절 장치처럼 의심과 불안을 조절하도록 도와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남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존감’이 있다.
그 온도조절장치가 작동하는 과정은 우리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작동 원리를 머릿속으로 가장 잘 그려보는 방법은 오히려 통일된 자아상이 없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심한 자기 도취자들’ 말이다.

내가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아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은 두 살과 다섯 살 사이에 찾아온다. 우리는 어머니와 서서히 분리되면서 즉각적 만족을 얻을수 없는 세상과 마주친다. 또한 나라는 사람은 혼자이며 생존을 위해 부모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에 대한 우리의 대처법은 부모가 가진 최상의 자질, 즉 강인함과 우리를 달래줄 능력등 여러 측면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립된 인간이 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인 셈이다. 

우리의 이런 노력을 부모가 격려해준다면, 그리고 스스로 강인함을 느껴야 하고 개성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인정한다면, 우리의 자아상은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차츰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이런 초기 발달 과정에서 뚜렷한 단절을 경험한다. 그래서 일관되고 현실성있는 자아에 대한 느낌을 한번도 제대로 구성해 보지 못한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그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도 심한 자기도취자일 수 있다. 지나치게 자기 안에 침잠해 자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어린자녀가 독립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격려하지 못했을 수 있다. 아니면 정반대로 사람을 옭아매는 유형의 부모일 수도 있다.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숨막힐 정도의 관심을 퍼붓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녀를 고립시켰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녀의 발전을 부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수단으로 생각하며 살수도 있다.

그런 부모는 자녀에게 자아를 정립할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을 잘 살펴보면 거의 언제나 방치되거나 옥죄인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이들은 돌아갈 자아도 자존감의 토대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려면 전적으로 타인이 주는 관심에 의존해야 한다.

심한 자기도취자가 어린시절 외향적 성격이라면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다. 어쩌면 아주 잘나가는 유년기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주목을 끌고 관심을 독점하는 데 달인이 되고 겉으로는 쾌활하며 활달해 보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이런 모습이 보이면 어른들은 아이가 나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징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이들은 자신이 가치있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해 ‘관심’이라는 버튼을 계속 눌러보며 위험할 만치 거기에 중독되고 있다. 만약 심한 자기도취자가 내향적 성격이라면 그들은 판타지에 귀의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을테니 심한 의구심과 자기혐오를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신(神)이 아니면 벌레가 될 것이다. 일관된 중심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인격을 시도할 것이며 그에 따라 판타지는 계속 바뀔 것이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의 악몽이 펼쳐지는 것은 보통 2, 30대가 됐을 때다. 이들은 그때까지도 아직 내면의 온도조절장치, 즉 자신이 사랑하고 의지할 단단한 자아의 개념을 형성하지 못했다. 외향적 유형은 살아 있다고 느끼고 인정 받으려면 끊임없이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들은 더 극적이 되고 과시적이며 과대망상적이 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지겹고 한심할 수도 있다. 

이들은 계속 새로운 관객이 필요하기 때문에 친구와 장소를 옮겨 다녀야 한다.
한편 내성적 유형의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판타지 속 자아에 더 깊이 빠져든다. 
사회생활에 서툴면서도 본인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 남들 눈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소원해지고 점점 더 위험하게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유형이 되었든 틀림없이 찾아올 자기 회의나 우울의 순간에는 자신을 달해야 하기 때문에 술이나 약물 기타 각종 중독 없이는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행동 패턴이 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거나 누가 도전해올 경우 방어책이 없다.

내면에서 그들을 달래주거나 그들의 가치를 인증해 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난 분노의 반응을 보이고 복수심에 불타며, 자신은 죽어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말고는 자신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터지면 그들은 자신을 상처입은 희생자 취급해서 남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심지어 동정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들은 까칠하며 예민하다. 작은 꼬투리라도 하나 있으면 모두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한다. 피해망상적이 되고 사방을 적으로 간주한다. 어떤 식으로든 본인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시큰둥하거나 참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다. 대화의 주제는 즉각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고 숨은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른 일화나 사건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주목을 받는데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까지 있다고 느껴지면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한바탕 악랄한 시기심에 불타 오른다. 이들은 극도의 자신감을 자주 내비친다. 이것은 늘 관심을 받는데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그들 내면의 휑한 공허함과 조각난 자아개념을 꼭꼭 감춰준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정말로 시험받는 상황이 됐다면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흔히 남들을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소위 ‘자기대상(self-object)’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람은 관심과 인정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다. 

그들은 남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마음대로 부리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가 서서히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도록 만든다. 연애 상대의 관심을 받는 데에 경쟁자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한 자기도취자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일부는 일에서 구원을 얻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일에 집중시켜 그 업적을 통해 그토록 갈망하는 관심을 얻는다. 변덕스럽고 종잡을수 없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자존감이라는 온도조절장치가 없는 그들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끊임없이 걱정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되면 장시간 외부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일에서 오는 걱정이나 조바심에 대처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이나 직업을 자주 바꾸게 되고 이것은 그들에게 다시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업적을 통한 진정한 인정을 끌어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인위적으로 관심을 자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심한 자기도취자를 상대하면 짜증나고 지칠 뿐만 아니라 너무 가까워질 경우에는 우리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극적인 상황을 끝없이 연출하면서 우리를 그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경우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심한 자기도취자와 연인이 된다면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며 배우자가 된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그들은 결국 모든 일의 중심은 자신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한다. 그런 경우 해결책은 일단 그들이 심한 자기도취자로 확인된 이상 방해하지 않는게 최선이다.

심한 자기도취자들 중에서도 특히 더 위험하고 해가 되는 유형이 하나 있다. 그들이 상당한 수준의 힘을 손에 넣기 때문인데 바로 ‘자기도취적 리더’다. 
이 유형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됐다. 성경에 나오는 압살롬이 아마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 그러나 고대 문헌에는 다른 이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몇 명만 예를들어 보면 알키비아데스, 키케로, 네로 황제 등이 있다. 

독재자나 제왕적 CEO는 대부분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이들은 보통 평균적인 심한 자기도취자보다 야망이 크며 한동안 그 에너지를 일에 쏟아부을 수 있다. 자기도취적 자신감에 가득찬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추종자가 생긴다. 이들은 남들이 감히 하지 못할 말이나 일을 하기 때문에 대단하고 실력 있어 보인다. 어쩌면 혁신적 제품에 대한 비전이 있을 수도 있고 워낙 자신감을 뿜어내기 때문에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도록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들은 사람을 이용하는데 달인이다. 

만약 이들이 성공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준비가 갖춰진 셈이다. 이들의 리더십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것은 이들의 과대 망상정 성향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런 그들에게 감히 누가 이의라도 재기한다면, 그들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심한 자기도취자 특유의 분노를 내놓기 쉽다. 이들은 과민하다. 또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속해서 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길 좋아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다. 그러면 관심의 중심에 서 기회는 더욱더 늘어난다. 이들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조직은 결코 안정될 수 업다.

 

종종 이들이 사업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다. 이들은 창의적 재주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유형의 리더는 결국 내면의 불안정함과 혼돈이 그들의 회사나 집단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들은 짜임새 있는 조직이나 회사를 만들지 못한다. 모든 게 반드시 본인을 거쳐 가야 한다. 누구랄 것 없이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이 그들의 '자기대상'이기 떄문에 그 모두를 직접 통제해야 한다. 이들은 그게 본인의 미덕이라고 자랑한다. 자연스러운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에 초점을 맞춰 확실한 한 가지를 창출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자기도취를 자기몰두의 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낮음부터 높음까지 눈금이 새겨진 자 위에 표시된다고 말이다. 거기서 특정 깊이,, 예컨대 중간 지점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사람들은 심한 자기도취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일단 한번 그 깊이에 도달하고 나면 이들이 다시 위로 올라가기는 아주 힘들다. 이들에게는 자존감이라는 장치가 없기 떄문이다. 심한 자기도취자는 완전히 자기 안에 파묻혀 있고 거의 늘 언제나 기준이 되는 지점보다 아래에 있다. 잠시 어떻게 남들과 교류가 이뤄지더라도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불안이 다시 치고 올라올 테고 그들은 저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기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다. 남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현실은 그저 본인들의 욕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끊임없이 관심 말고는 그들이 살아남을 길은 없다.

 

이 중간 지점보다 위에 위치한 사람들을 우리는 "정상 범주의 자기도취자"라고 부리기로 하자. 우리 대부분이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우리도 누구나 자기 안으로 참잠한다. 다만 너무 저 아래로까지 떨어지지 않을 수 이는 것은 내가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아에 대한 통일된 개념이 있기 떄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이 통일된 자아 개념이 우리에게는 내적인 회복력 같은 것을 만들어준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우리도 가끔 중간 지점 아래로 내려가 심한 자기도취자 비슷한 경험을 할 떄가 있다. 특히나 사는 게 힘들고 우울한 순간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다.

 

 

상처받은 기분이나 불안한 마음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늘 관심을 받기 위해 낚시질을 하며 다닐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정상 범주의 자기도취자들은 관심을 밖으로 돌려서 일에 몰두하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게 가능하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는 '심한 자기도취자'라는 현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숫자로 따지면 우리의 다수는 아닐지 몰라도 그중에는 세상에 대단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자들도 있다. 

극적인 상황을 조장하고 우리를 그들의 목적에 사용할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유해한 사람들을 우리는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비정상적 에너지로 우리를 끌어들일 때 거기에 걸려 든다면 다시 빠져 나오는 일은 악몽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전세를 역전시켜 상대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도취적 리더다. 우리는 우리를 잡아끄는 그들의 매력에 저항하면서 겉으로는 창의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가면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살면서 누구나 심한 자기도취자들을 만날 일이 있다. 따라서 그들을 다루는 법을 알아두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둘째, 자신의 본성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도취자다. 대화를 나누면 누구나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훌륭한 내 취향을 거울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적극성을 장점으로 생각한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심한 사람은 적극성을 역겹다고 평가하고, 오히려 내성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침에 약하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자기도취자가 아니라며 세상의 모든 나르시스트를 맹비난하는 설교꾼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자기도취자인 경우가 많다. 손가락질을 하며 설교할 때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누구나 자기 안에 빠져 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아를 창조하는 것은 건강한 성장 과정의 하나고, 거기에 어떤 오명을 씌울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자존감이 없다면 우리는 깊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정상범주의 자기도취 그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려 하거나 남보다 더 이타적인 사람인 척 하려고 든다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로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는 더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늘 눈금의 가장 높은 곳 근처에 머문다. 

다른 여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공감능력도 양질의 관심을 통해 습득된다.
스마트폰을 봐야 해서 외부로의 관심이 자꾸 차단된다면 타인의 감정이나 관점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과의 교류는 수박겉핥기처럼 표면으로만 겉돌고 계속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오면서 진정한 관계는 전혀 맺지 못한다.

군중 속에 있어도 사실상 혼자다. 사람은 그저 하나의 도구가 된다. 인연을 맺는 관 계가 아니라 불안을 달래주는 도구말이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교류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에 맞춰 만들어졌다. 인간이라는 종의 지능이 급격히 좋아진 데는 바로 이 복잡한 사회적 교류가 크게 한몫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줄어들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뇌에 부정적 영향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회성이라는 근육이 위축된다. 

설상가상으로 서구의 문화는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몰두를 더욱더 부추긴다. 남들은 나와 다른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욕망도 생각도 같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는 이런 추세를 거스르고 공감에너지를 창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펙트럼의 양쪽 극단으로 갈수록 나름의 이유로 가속이 붙기 쉽다. 깊은 자기도취는 우리를 점점더 깊이 가라앉게 만든다.

현실과의 유대가 약해지면서 일도 인간관계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공감정반대의 작용을 한다. 관심을 외부로 돌릴 수록 긍정적 피드백이 계속해서 돌아온다.

사람들이 당신 주위에 더 많이 머물려고 한다. 공감근육이 발달하고 업무 성과가 더 좋아지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관심을 노력하지 않아도 받게 된다. 공감은 위 쪽으로 작용하는 긍정적 추진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공감능력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는 아래와 같다.

공감적 태도
공감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공감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정말로 남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늘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남들을 순식간에 판단해 어느 한유형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는 오히려 내가 아주 무지하며 타고난 나의 편향때문에 사람을 부정확하게 판단할 거라고 가정하는 태도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에 맞는 가면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가면을 현실로 오인한다. 사람을 보자마자 판단하는데 도를 이제는 그만 포기하라. 마음을 열고 사람을 새로운 시선에서 보라. 상대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거나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졌을거라 가정하지 마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아주 특이한 심리조합으로 구성된 미지의 나라와 같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탐구해야 할 대상이며 뚜껑을 열어보면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새로운 시선에서 본다는 유연하고 열린 태도는 창조적 에너지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더 많은 가능성과 대안을 기꺼이 고려하려고 마음먹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감능력을 개발하면 창의력 역시 향상될 것이다.

이런 태도의 변화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곳은 수많은 일상 대화에서다. 평소처럼 떠들고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거슬러 상대의 관점을 열렬히 듣고 싶어 하라. 우리는 상대의 관점에도 어마어마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쉴새없이 중얼거리는 내면의 독백은 최대한 차단하고, 상대에게 온전히 주목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정도'이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상대가 한말 혹은 말하지 않았으나 내가 감지한 내용을 상대에게 그대로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들어라. 그렇게 하면 상대가 나에게 어마어마한 매력을 느끼는 효과까지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태도는 내가 나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만큼이나 상대를 너그럽게 보도록 만들어준다. 예컨대 우리는 누구나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 내가 실수했을때는 나를 그렇게 만든 환경을 탓하면서,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면 그 사람의 결합으로 본다. 마치 상대의 인격이 불완전해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귀인 편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편향을 이겨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감적 태도가 있으면 남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주변 상황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나 자신을 대할때와 똑같이 상대도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을 거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느냐 여부는 당신의 자기애가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내가 남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느끼거나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면 타인에게 몰입하고 공감하는 순간의 깊이가 아주 얕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흠결까지 포함해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흠결이 또렷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천사가 아니다. 나는 남들과 똑같은 본성을 타고 났다.' 이런 태도를 취하면 당신 자신을 웃어넘길 수 있고 모욕을 당해도 가볍게 받아넘길 수 있다. 속이 정말로 단단하고 회복력이 있으면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가 훨씬 쉽다.

# 본능적 공감
공감이란 감정 조율의 도구다. 남의 생각을 읽거나 알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상대의 감정이나 기분을 파악하는 것은 훨씬 쉽다. 누구나 상대의 감정은 알아채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물리적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투과성이 높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생리 반응을 지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보디랭귀지나 목소리 톤을 통해 드러나는 사람들의 기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라 말하는 사람을 잘 관찰하면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 분위기는 그가 말하는 내용과 서로 어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신감이나 불안, 방어적 태도, 거만함, 좌절감, 들뜸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목소리나 제스처, 자세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상대가 방어적 태도를 보이면 우리에게도 그런 기분이 들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핵심적으로 알아내야 할 것은 상대의 의도다. 그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그 뒤에는 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상대의 말에서 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의 목표에 나를 맞춘다. 주의를 기울이면 그 의도나 목표 역시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예컨대 아는 사람이 평소답지 않게 갑자기 내 인생에 관심을 보인다면 신경이 쓰일 것이다. 정말로 나를 알고 싶어서 이러는건가? 그냥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나를 이용하려고 분위기를 조성 중인가? 이럴 때는 흥분과 관심을 표현하는 상대의 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읽어낼 수 있는 전체적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라.

상대는 내 말을 얼마나 유심히 듣고 있는가? 상대가 계속해서 눈을 맞추는가? 상대가 내 말을 듣고는 있지만 자기 안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가? 갑자기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되긴 했으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상대는 아마 나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나를 조종 하고 이용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공감은 거울신경(mirror neuron)에 크게 의존한다. 거울신경이란 물건을 줍는 것처럼 누가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마치 우리가 직접 그 렇게하는 것처럼 뇌 안에서 활성화되는 뉴런이다. 거울신경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가 어떤 기분일지 느껴볼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공감능력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흉내도 아주 잘 낸다고 한다.

누군가 미소를 짓거나 고통에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따라 하고 그를 통해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느낀다.

누가 미소를 짓거나 기분이 좋아 보이면 우리에게도 자주 전염되는 효과가 있다. 이 능력을 의식적으로 사용해 상대의 감정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상대의 표정을 흉내내거나 혹은 과거에 그런 감정을 일으켰던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보면 된다.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는 『뿌리』를 집필하기 전에 한동안 어두컴컴한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흑인 노예들이 느꼈을 밀실공포를 재현해보려 애썼다고 한다. 그는 노예들의 감정을 뼛속깊이 느껴봄으로써 노예의 세상으로 들어가 글을 쓸 수 있었다.

더불어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따라하면 상대로부터 공감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이게 겉으로 드러날 때도 있는데 바로 '카멜레온 효과'라는 것이다. 대화를 나눌 때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은 상대의 자세나 제스처를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한 사람이 다리를 꼬면 다른 사람도 다리를 꼬는 식이다.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의 행동을 일부러 따라 해서 교감을 유도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보이면 교감이 더 깊어진다. 심지어 상대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상대의 기분을 깊숙이 받아들인 다음, 다시 상대에게 돌려주면 라포르(rapport)라고 하는 깊은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런 정서적 라포르를 몹시 갈망한다.

라포르를 경험하는 일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라포르에는 최면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상대의 거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의 나르시시즘에 호소할 수도 있다.

본능적 공감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에 완전히 다 휘말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읽어낸 것들을 분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통제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강하게 노골적으로 이런 방법을 쓰면 상대에게 소름끼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선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보이고 표정이나 행동 등을 따라하는 것은 거의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이뤄져야 한다.

분석적 공감
우리가 친구나 배우자를 그토록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의 취향이나 가치관, 가족관계 등에 관해 워낙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정보가 생겨 첫인상을 수정해야 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물리적 공감이 아주 강력하기는 해도 반드시 분석적 공감으로 보완해줘야 한다.

이게 특히 도움이 되는 것은 상대가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거나 나를 밀어내는 뭔가가 있어서 저항감이 들며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려울 때다. 그럴 때는 상대를 빨리 판단해서 어느 한 유형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물론 세상에는 순전한 바보나 사이코패스처럼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뜻 이해가 안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들을 훌륭한 도전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 우리의 기술을 갈고닦을 기회라고 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사람이 맘에 안들어. 어떤 사람인지 꼭 더 알아봐야겠어."

분석적 공감이 이뤄지는 것은 대부분 대화나 정보 수집을 통해 상대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볼 때다. 그런데 어떤 정보는 다른 정보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예컨대 사람의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어린 시절 정립된다. 사람들은 부모나 부모와의 관계를 토대로 강하다, 예민하다, 관대하다, 약하다 등의 개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울음을 터뜨리는 남자가 있을 때 예민함의 징후로 보고 매력을 느끼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나약함의 신호로 봐 배척하는 여성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투영한다면 상대의 반응을 잘못 읽어 불편 요한 갈등을 빚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연구할 사람의 어린 시절 및 부모형제와의 관계에 대해 최대한 많은 내용을 수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상대가 지금 가족들과 맺고 있는 관계도 그 사람의 과거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상대가 가족 내에서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읽도록 노력하라. 이것은 상대가 얼마나 반항적인지 혹은 순종적인지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배우자를 골랐는지도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다.

상대가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 같으면 비교적 대답이 자유로운 질문을 하거나 나 자신의 가족관계를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하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 혹은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일은 왜 쉬운 편이다.

상대의 극도로 예민한 지점을 알려주는 심리적 방아쇠(1장 참조)를 찾아보라.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면 상대의 경험으로부터 그런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의 큰 목표는 그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이 사람이 나나 내가 아는 다른 사람과 다른 지점을 찾고 있다.

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라. 직접 부딪치며 만나는 사람이 많을수록 당신의 실력은 향상될 것이다. 또 만나는 사람이 다양할수록 공감 기술도 다양해질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유동성을 계속 유지하라.

사람에 대한 생각은 결코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면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라.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상대는 어떻게 변해가고 나는 또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살펴보라. 매 순간 집중하라. 상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 교류하는지 지켜보라.

사람들은 종종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형'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상대가 나에게 일으키는 전반적인 느낌이나 분위기에 주목하라. 이런 느낌이나 분위기는 계속해서 바뀐다. 여기에 능숙해지면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신호들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게 눈에 보일 것이다. 본능적 교감과 분석적 교감을 계속해서 섞어 사용하라.

당신의 공감능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보이면 큰 짜릿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에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을 것이다. 불필요한 마찰이나 오해가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삶이 더 순조로워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 본성에서 가장 뿌리 깊은 법칙은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19세기 미국의 심리학자)

 

 

 

요약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바꾼다

 

자아와 관심
- 인간의 본성: 관심에 대한 욕구
- 관심의 중요성: 타인의 관심을 통해 나를 알아주고 인정받는 느낌
- 자아의 중요성: 자아를 만들어내고 강화하여 내면으로부터 인정을 받음
- 자아의 구성: 취향, 의견, 세계관, 가치관
- 자아의 한계: 현실과의 조화가 필요

자아의 형성과 발달
- 어린 시절의 영향: 부모의 격려와 인정이 자아 발달에 영향
- 부모의 역할: 부모의 인정과 격려가 자아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
- 자아의 현실적인 구성: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어려움

자아와 건강한 자기도취
- 건강한 자기도취자: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개념을 가짐
- 관심과 공감: 외부로의 관심을 돌리면 긍정적 피드백이 돌아옴
- 현실과의 유대: 현실과의 유대가 약해지면 인간관계 진행이 어려워짐

자기도취자 유형과 행동 패턴
- 심한 자기도취자: 과도한 자기도취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음
- 심한 자기도취자 유형: 외향적, 내향적, 자기도취적 리더 등 다양한 유형 존재
- 심한 자기도취자와의 관계: 심한 자기도취자를 다루는 법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

본능적 공감

-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의 감정은 물리적 경계를 통해 파악된다.
  - 상대의 말에서 드러나지 않는 감정도 파악할 수 있다.

- 상대의 의도와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의도와 목표를 파악한다.
  -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대응한다.

- 거울신경을 활용하여 상대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의 표정과 감정을 따라하면 상대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거울신경을 통해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

 


분석적 공감

- 상대의 가치관과 취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의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를 파악하여 가치관을 이해한다.
  - 상대의 반응을 분석하여 정확한 이해를 도모한다.

- 상대의 심리적 방아쇠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의 예민한 지점을 파악하여 심리적으로 접근한다.
  - 상대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여 심리적 접근을 시도한다.

-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 대화를 통해 상대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 상대와의 교류를 통해 능숙해지고 더 많은 것을 파악한다.

 

 

 

 

 

 

참고문헌/원글 내용 : https://www.dentalnews1.com/news/articleList.html?page=3&total=67&box_idxno=&sc_sub_section_code=S2N134&view_type=sm /덴탈뉴스  (원글:인간 본성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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