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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독서 일지 (요약)

[인간 본성의 법칙] Law01. 인간본성의 열쇠 :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 3단계 감정 극복법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요약) (Part.2)

by 치키치키박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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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린 / 인간 본성의법칙 (THE LAWS OF HUMAN NATURE)

 

 

 

전게시물이랑 이어지는 게시물입니다 . (Part2)

 

 

인간본성의 열쇠 :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살다가 뭔가 잘못되면 우리는 자연히 원인을 찾는다. 내 계획이 왜 어그러졌고 내가 낸 아이디어가 왜 돌연 반대에 부딪혔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몹시 괴롭 고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찾을 때 우리는 매번 같은 유형의 설명을 맴도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나를 싫어해서 일부러 훼방을 놓았 다거나 정부나 사회적 관습처럼 나를 방해하는 거대한 반대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는 누가 나에게 잘못된 조언을 줘서, 내게 정보를 감춰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죄다 내가 운이 없어서 아니면 불운한 환경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우리의 무력감을 강조하는 설명법이다. ‘달리 내게 무슨 수가 있었겠어? X가 그렇게 더러운 술수를 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내용도 다소 모호하다. 타인의 악의적 행동을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단순한 짐작이거나 상상일 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우리의 감정(분노, 좌절, 우울)을 오히려 더 고조시키고, 그러면 우리는 그 속에 풍덩 빠져 자기연민을 느낀다.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눈에 띄는 우리의 첫 반응은 원인을 찾아 외부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 뭐 나도 벌어진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나 반대세력이 내게 발을 걸어 넘어 뜨린 거야.’ 이런 반응은 인간이라는 동물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 옛날에는 신이나 악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은 사뭇 다르다. 분명 어딘가에서 어떤 개인이나 거대한 세력이 끊 임없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길을 잘못들게 되는, 그래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비이성적 성향’이다.

우리 마음에서 정확히 감정이 지배하는 부분 말이다. 이 성향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맹점 같은 것이랄까. 그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2008년 금융위기사태였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마치 인간의 비이성적 성향을 종류별로 모두 집대성해 놓은 것 같은 사례였다.

금융위기사태가 일단락되자 미디어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흔하디 흔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무역 불균형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2000년대 초반 저금리 대출 시대를 열었고 그게 과도한 레버리지(leverage 차입금을 지렛대처럼 사용해 적은 자기 자본으로 큰 수익을 내는 것. - 옮긴이)로 이어졌다고 말이다.

 

당시 거래되고 있던 고도로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들은 정확한 가치를 매기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한 손익을 측정할 수 없었다. 약삭빠르고 부패한 내부자들 무리가 존재했고 그들은 시스템을 조작해 손쉽게 수익을 올렸다. 탐욕스러운 대출기관들은 아무 의심없는 주택 소유자들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팔았다.

정부의 규제는 너무 많고 관리감독은 부했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각종 모형과 거래 시스템이 폭주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놀라운 ‘현실 부정’을 보여준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가 터질 때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매일 같이 투자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한 건의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구매자와 판매자는 이 고위험 투자상품으로부터 발을 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장에 거품이 있다고 경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에 대형 헤지펀드회사 롱텀 캐피털(Long-Term Capital Managenent)이 도산하면서 향후 더 큰 금융위기 사태가 어떤 식으로 발생할지를 정확히 보여줬었다. 더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1987년의 거품붕괴사태도 있었고, 역사책을 읽었다면 1929년 주식시장 거품 형성 및 폭락 사태를 참조할 수도 있었다.

주택 구매자들 역시 계약금도 없는 주택 담보대출 및 이자율이 급상승하게 설계된 대출조건이 얼마나 위험할 지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선 모든 분석이 무시한 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이었다. 수백 만의 구매자와 판매자를 우르르 몰고 다녔던 인간의 비이성적 성향 말이다.

눈먼 돈의 유혹에 일단 한 번 빠지고 나자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은 투자자도 감정적으로 변했다. 각종 연구 결과며 전문가를 동원했지만 그건 이미 믿기로 작정한 생각들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이번에는 달라”, “집 값이 떨어지는 거 봤어?” 같은 말이 진리로 둔갑했다.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무분별한 낙천주의에 휩쓸렸다. 그러다가 시장 붕괴와 패닉이 찾아왔고 이제는 원치 않아도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모두가 투기 광풍에 빠져 있었음에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는 커녕, 똑똑한 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외부 요인만 탓하며 어떻게든 광기의 근원을 도외시하려했다. 이런 일은 비단 2008년 금융위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87년 및 1929년 시장 붕괴 1840년대 영국의 철도투자 열풍, 1720년대 영국 사우스 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 투기사건 때도 사람들은 똑같은 설명을 늘어 놓았다.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고 투기 규제법안들이 통과됐다. 그러나 어느 것도 효과는 없었다.

경제에 거품이 형성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크게 호소하기 때문이 다. 그 호소력은 개인이 혹시라도 갖고 있었을지 모를 추론 능력까지 완전히 제압해 버린다.

탐욕과 눈먼 돈, 빠른 결과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성향인데, 경제 거품은 바로 이 타고난 성향을 건드린다. 남들이 뻔히 돈버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거기에 동참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지구상의 그 어떤 규제도 본성을 통제할 만큼의 힘은 없다. 경제에 거품 생성과 붕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문제의 진짜 원인을 공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읽지 않는 사람들, 계속 호락호락 넘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도 같은 일은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같은 문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부정적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 도 경제 거품이 재발하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를 취한다. 내면에 있는 진짜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

알아둘 사항이 있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한다면 자존심을 좀 덜 상하게 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감정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항거불능의 현상으로 우리 중에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둘째, 우리의 비이성적 성향은 어느 정도는 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감정 처리’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 우리 본성의 하나로 정해져 있다. 그러니 우리가 비이성적 성향을 띠는 것은 우리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점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수백만 년 동안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해 미세조정된 본능에 의존했다. 도마뱀은 눈 깜짝할 새 환경의 위험을 인지하고 현장으로부터 줄행랑을 친다. 말하자면 충동과 행동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일부 동물에게는 이들 감각이 더 크고 더 오래 지속되는 무언가로 진화했는데 그게 바로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이 공포라는 게 해당 동물에게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특정 화학 물질을 분비해서 고강도의 흥분을 일으키는 수준이었다. 

흥분을 통해 주의력이 높아지면 해당 동물은 굳이 단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 가지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예컨대 환경에 더 민감해져서 무언가를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늘어나다 보니 생존확률도 더 높아졌다. 이렇게 공포를 감지하는 것은 겨우 몇 초 정도만 지속됐는데 그만큼 반응 속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에게는 이런 흥분이나 직감이 더 심오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바로 의사소통의 필수적 형태의 하나가 된 것이다. 예컨대 사나운 소리를 내거 나 털이 쭈뻣 서는 것은 분노를 나타내 적을 물리치거나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특정한 자세나 냄새는 성적 욕망과 의향을 드러냈고 자세나 제스처로 욕망을 표시했다. 

새끼들이 내는 특정한 소리는 극도의 불안을 알리며 어미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 됐다. 영장류의 경우는 이런 의사소통이 계속해서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다. 알려진 것처럼 침팬지도 시기심과 복수심등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이런 진화과정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났다. 훨씬 최근에는 동물이나 인간 모두 인지력이 발달했고, 언어가 발명되고 추상적 사고를 하게 됐다.

수많은 신경과학자들이 확인해 준 것처럼 이런 진화의 결과 고등 포유류의 뇌는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그중 가장 오래된 부분은 ‘파충류 뇌’다. 파충류 뇌는 신체를 조절하는 모든 무의식반응을 관장한다. 즉 본능의 영역이다. 그 위로는 ‘대뇌 변연계’라고 하는 오래된 포유류 뇌가 있어서 느낌과 감정을 관장한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신피질’이 진화했는데 이 부분이 인지능력과 인간의 언어를 통제한다.

그 기원을 따져보면 감정은 신체적 흥분을 통해 우리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주변의 무언가를 알아채게 하려는데서 유래했다. 화학반응과 지각으로 감정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변환해야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뇌에 서 감정이 처리되는 곳은 언어나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이 엇나가거나 부정확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내가 X 라는 인물에게 분노를 느낄 때 실제로 그 감정의 근원은 부러움일 수도 있다. 의식 적으로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X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X가 가진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러움이란 결코 편안해질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걸 더 받아들이기 쉬운 감정, 즉 분노나 혐오, 원망등으로 번역한다. 또 다른 예를 들 어보면 우리가 좌절감이나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예컨대 Y가 내 앞을 지나가면 우리는 운 나쁜 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정작 내 분노는 다른 이유 로 촉발되었고 지금 나는 Y가 저지른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도하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혹은 내가 정말로 Z라는 사람에게 화가 났어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 분노는 오랫동안 내 안에 잠자고 있었고 내게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과거에 내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 아마도 부모 중 한명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의 분노가 Z를 향하는 것은 Z가 그사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내 감정의 근원이나 그 감정이 초래한 전반적 기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어떻게든 그 감정을 해석해서 언어로 변환하려고 시도해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나 변환은 틀린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는 더 간단한 해석 혹은 내마음에 드는 해석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고, 끝끝내 어느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가 우울함을 느낄 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감정에는 이렇게 무의식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감정으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충동적 행동을 중단하거나 예방하는 것 역시 극히 힘든 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버리고 떠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60페이지 유아기의 심리적 방아쇠’ 참조)

사회적 동물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감정의 소통기능은 곤란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른 감정이면서 분노를 표출하거나 다른 대상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할 경우 상대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는 공격에 대한 반응을 하고 오해가 오해를 낳으면서 폭포수효과가 일어난다.

감정이 진화를 거듭해 온 이유는 인지능력이 진화해 온 것과는 사뭇 이유가 다르다.그렇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한 형식이기는 해도, 뇌안에서 두가지가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동물의 경우는 몸으로 느낀감각을 추상적 언어로 변환해야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감정이 원래 의도된대로 무리없이 제기능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과 인지능력이 서로 분리돼 있기때문에 내부에서 끊임없는 마찰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두번째 감정적자아’까지만들어진다.

동물은 잠시 공포를 느껴도 이내 그감정이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느낀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공포를 점점 더 심화시키면서 위험이 사라진 한참후까지도 계속해서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러다 급기야는 상시적 불안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지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인간이 이토록 진보했으니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 감정적 자아를  잘길들이지 않았겠냐고 믿고 싶은 사람도 많을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선조들만큼 폭력적이거나 육욕에 휘둘리거나 미신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진보나 기술이 우리의 본성을바꿔놓지는 않았다. 기술과 진보는 그저 감정의 형태와 그에 따른 비이성적 행동의 유형을 바꿔놨을 뿐이다.

한 예로 정치가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이미 수백,수천년전부터 우리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그런 장난질을 오히려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줬다.

광고회사들은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설계된 메시지를융단폭격처럼 퍼붓는다. 우리는 늘 소셜미디어에 접속돼 있고 그래서 바이러스처럼퍼져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정서적영향에 취약하다. 이들 매체는  차분한 반성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것들이 아니다.

이것들이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한, 우리는 한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정신 적 여유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민회에 참석한 아테네인들처럼 수많은 감정과 불필요한 연극놀음에 꼼짝없이 포위당해 있고, 그 이유는 인간 본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적’, ‘비이성적’이라는 단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내게 동의하지않는사람에게는 죄다 ‘비이성적’ 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러니 최대한정확하게 이둘을구분할 수 있도록 간단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자. 우리가 지침으로 삼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끊임없이 감정을 느끼고 그감정은 계속해서 인간의 생각을 물들인다. 감정은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내자존심을 세울수 있는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게 만든다.

생각을 할 때 내느낌이나 기분이 전혀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성적인 사람은 이점을 잘알고 있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기 성찰및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는 감정을 뺀 사고를 하고 그 영향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그런 자각이없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효과나 결과에 대한 면밀한 고려없이 행동으로 돌진한다. 

사람에 따라 취하는 행동이나 의사결정이 다르고 그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이성적인 사람은 그가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고, 목표를 달성하며 팀원들과 효과적으로 협업하고 지속될 수 있는 결과를 창출한다는사실을 보여준다.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은 부정적 패턴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디를 가든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며 꿈이나 프로젝트를 절대 실현하지 못하고 분노하면서 변화를 갈망하지만 그게 구체적 행동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감정적이고 반사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내보이면서도 본인이 그렇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여진’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지독히 감정적인 사람도 때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고 대담한 행보를 통해 일시적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따라서 이사람이 이성적인지 비이성적인지 판단할 때는 시간을 두고 지켜 보는 게 중요하다.

성공을 지속시키고 훌륭한 전략을 거듭 내 놓을 수 있는가?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있는가?

이성적인 사람과 비이성적인 사람 사이의 차이가 특히 두드러지는 상황도 있다. 장기적 영향을 고려해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판단해야 할 때가 그렇다.

예를 들어 자녀의 양육권을 놓고 이혼절차를 진행할 때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나 편견등은 내려놓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체적으로 아이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은 배우자에 대한 기싸움에 사로잡혀 원망이나 복수심이 판단을 흐리도록 내버려 둔다. 그렇게되면 싸움은 길어지고 아이는 상처받을것이다.

직원이나 협력사를 고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성적인 사람은 능력을 지표로 사용한다. 이 사람이 그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은 남을 홀리는 매력이 있거나 내 불안을 자극할 줄 알거나 내게 도전도 위혐도 되지 않을 사람에게 홀딱 넘어가 이유도 모르는 채 그를 채용해 버린다.

이렇게 채용된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고 무능할 테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탓한다.

이직을 할때도 이성적인 사람은 장기적 목표에 맞춰 자리를 옮긴다.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은 새일자리가 당장 얼마를 주는지. 내가 어느 정도 때로는 아주 하찮은 수준의 삶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얼마나 농땡이를 칠 수 있는 일인지, 얼마만큼의 주목을 받을 수있는 자리인지  따진다. 그러니 커리어가 계속 발전하지 못한다.

위 모든 경우에서 둘의 대표적인 차이는 ‘자각의 정도다.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이성적 성향을 기꺼이 인정하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은 혹시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 아니냐고 누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만해도 극도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자기 성찰이나 학습 능력이 없다.  그리고 계속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점점 더 방어적이 된다. 


이성이 감정을 초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페리클레스 역시 대담하고 모험적인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테나의 정신을 사랑했고 아테나가 자극하는 생각들을 좋아했다. 

그는 아테네인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동료시민들에게 공감하기를 바랐다. 그는 균형 잡힌 상태를 꿈꾸었다. 지금 내 기분이 왜 이런지를 분명히 알고 충동을 인식함으로써 저도 모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충동이나 감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생각하는 자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이게 바로 그가 생각한 ‘이성’이고 우리의 이상향이다.

다행히도 이성을 획득하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3단계로 된 과정을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첫째, 앞으로 우리가 ‘약한 비이성’이라고 부를 것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약한 비이성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기분이나 느낌이 작용한 결과로서 의식보다 아래에 있다. 

계획을 세우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때 기분이나 느낌이 사고과정을 얼마나 깊이 왜곡하는지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다. 

기분이나 느낌은 생각의 편향을 만들어내고 그 편향은 역사의 모든 단계, 모든 문화권에서 증거가 발견될 만큼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다. 생각의 편향은 현실을 왜곡해 실수나 잘못된 결정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삶을 어렵게 만든다. 이들 편향을 알아두면 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

둘째, 앞으로 우리가 ‘강한 비이성’이라고 부를 것의 성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 강한 비이성이 나타나는 것은 흔히 어떤 압박으로 인해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다. 

분노나 흥분, 원망, 의심 등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 감정이 점점 격화되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상태가 된다. 보고 듣는 모든 게 그 감정의 렌즈를 통해 해 석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는 다른 감정에 대한 반응 역시 더 예민하고 취약해진다. 예컨대 초조함이나 원망은 분노나 깊은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 

이런 무의식적 반응 상태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폭력을 휘두르고, 광적으로 집착하고,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을 부리고 남을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하려 한다. 강한 비이성은 위기나 충돌, 참사가 될 의사결정 같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강한 비이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이런 무의식적 반응 상태가 됐을 때 그 사실을 인지하고 물러남으로써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셋째, 뇌의 사고 부분을 강화해 줄 몇 가지 전략 및 연습을 실천해서 감정과의 끝없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생각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는 3단계 과정이 이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도와 줄 것이다. 인간 본성을 연구하고 실천할 때 이 3단계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1단계: 내 안의 편향을 자각한다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감정은 우리의 사고과정과 의사결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쾌락을 원하고 고통은 피하려는 욕망이다. 우리의 사고는 어김없이 이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것들은 생각만 해도 움찔한다. 우리는 내가 ‘진실을 찾고 있다’, ‘현실적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고수하는 생각들은 나의 긴장을 이완시켜주거나 자존심을 세워주거나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들이다. 
바로 이런 ‘사고과정의 쾌락원칙’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정신적편향의 근원이다.

당신이 다음의 편향중 단 하나라도 ‘나는 이 편향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쾌락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니 쉴새없이 작용하고 있는 다음의 편향들이 내 안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타인의 비이성적 성향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을 배워두자.

확증편향 :

‘나는 증거를 살펴보고 대체로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내려 우리는 이미 생각을 정했으면서 그 생각이 이성적으로 도출된 결론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증거를 찾아 나선다.

‘이보다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쾌락원칙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재확인시켜 줄 증거를 찾아 내고야 만다. 바로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이 발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울 때 특히 위험부담이 높은 계획을 세울 때다. 계획이란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바라는 긍정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만약 예상가능한 모든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결과를 똑같이 고려한다면 끝내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바람직한 긍정적 결과, 즉 장밋빛 시나리오의 편을 들어주는 정보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컨설턴트들은 확증편향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선호를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재확인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고 싶은대로 해석할 것 이다. 내 조언이 그들의 욕망과 어긋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소위 전문지식이라는 내 의견을 무시할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형태의 확증편향에 더 많이 지배당한다.

세상의 수많은 확증편향을 조사해보고 싶다면 진실이라기에는 너무 훌륭해 보이는 이론들을 찾아보면 된다. 그런 이론들을 증명해줄 통계나 연구자료는 사방에 널려 있다. 내 주장이 옳다고 이미 확신하고 있다면 근거가 될 자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 가보면 한 가지 주장의 양측입장을 모두 뒷받침해 주는 연구 자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누군가 ‘증거’를 제시한다고해서 그 생각이 옳다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해당 증거를 직접 냉정하게 확인해 보고 최대한 회의적인시각을 동원해야 한다. 내가 혹은 누군가가 가장 아끼는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정하는 증거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항상 몸에 배도록 해야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과학적 태도다.

확신 편향
‘내가 이토록 확신한다면 틀림없는 사실인 거야.’
내심 마음에 드는 생각을 계속 고수할 계획이면서도 우리는 내면 깊숙이서 긴가민가 약간의 의심을 품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 생각을 맹렬히 확신하면서 혹시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리 높여 반박하는 게 바로 그런 노력이다. 

마치 내가 이 생각을 방어하기 위해 이 정도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면 이 생각은 절대로 거짓일수 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편향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리더와의 관계에서다.

리더가 어떤 의견을 피력하면서 열성적인 어조와 몸동작, 생생한 비유, 재미난 일화를 곁들여 깊은 확신을 가지고 말하면, 우리는 그가 저렇게 확신하는 것은 해당 아이디어를 면밀히 검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누군가 좀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머뭇거리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그의 주장에 근거가 약하고 확신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우리가 세일즈맨이나 선동가에게 취약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를 설득하고 기만하기 위해 확신을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가 볼거리에 목말라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반쯤은 거짓인 주장조차도 극적인 효과로 눈가림을 한다.

 


겉모습 편향
‘나는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어. 내가 보는 게 그들의 실체야.’
우리는 사람들의 실체를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본다. 그런 겉모습은 대 개 진실을 호도한다.

첫째, 사람들은 스스로 꾸준한 훈련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앞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겉으로 사람들은 고 귀한 뜻을 지지하고 늘 열심히 일하고 양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가면을 쓴 모습을 우리는 실제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는 후광효과에 잘 속아 넘어간다. 누군가에게서 긍정적(똑똑함) 혹은 부정적인 특징을 보고나면 우리는 그 사람이 거기에 어울리는 다른 긍정적또는 부정적인 특징도 갖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외모가 훌륭하면 더 신망있게 보이는데 특히나 정치가라면 더하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아마도 윤리적이고 양심적이며 그런 행운을 누릴 만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후광 효과는 성공한 이들 중 다수가 결코 윤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그 자리에 갔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그들은 영악하게 그런 사실을 감추고 있을뿐인데 말이다

집단편향
‘내가 가진 생각은 내 생각이야. 나는 우리 집단의 말을 듣는 게 아니야. 나는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무리와 다르거나 고립되었다는 느낌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겁먹게 만든다. 우리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낀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나 의견을 수용할 때는 그 생각이 이런 안도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끌림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히 내 힘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특정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한 번 살펴보라. 

누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대놓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다들 따르는 뚜렷한 기조나 방침이 있다. 누군가 좌파우파에 속해 있다면 이슈가 수십 가지가 있어도 마법처럼 그의 의견은 한 방향을 향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사고 패턴이 이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탓하기 편향
“나는 내 경험과 실수에서 배워.”

실수나 실패가 발생하면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훈을 배워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저지른 잘못을 그다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자기성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럴 때 자연스러운 반응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 혹은 순간적 오판을 탓하는 것이다. 탓하기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들여다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면 내가 느끼는 이 우월감이 정당한가라는 의심이 생기고, 자존심에 금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한 일을 반추하는 척 시늉만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쾌락 원칙이 다시 부상하고 실수중에서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부분마저 잊어 버린다. 그러면 또다시 욕망과 감정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수박 겉핥기식 반성과정을 거쳐 잊어버리고 죽는 날까지 같은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세상에 실수는 거의 없을 테고, 누구나 승승장구할 것이다.

우월성 편향


‘나는 달라. 나는 남보다 더 이성적이고 윤리적이야.’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거만하게 들리기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설문조사및 연구결과에서 자신을 남과 비교해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한다. 이것은 마치 시각적 착시효과와 비슷하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나 비이성적 경향은 보지 못하고 남들의 것만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예컨대 상대편 정당 사람들이 내놓은 의견은 이성적 원칙에 근거한 게 아니고 우리편 의견은 이성적인 주장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윤리적 측면을 보더라도 내가 일을 하면서 기만이나 조작을 사용했다거나 영악하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승진했다고 인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타고난 재능과 근면성실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 른 사람의 경우는 마키아벨리가 이야기한 것 같은 온갖 술수를 동원했을 거라고 쉽사리 단정한다. 그러니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가 한 모든 일이 정당화된다. 

우리는 내가 이성적이고, 점잖고, 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것들이 우리문화에서 크게 장려하는 자질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가는 큰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라면 정말로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면 세상에는 선행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셈이다.

이성과 윤리는 자각과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지. 결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이성과 윤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성숙’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2단계: 심리적 방아쇠를 확인한다

 

우리의 사고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약한 감정은 우리 자신의 충동에서 나온다. 예컨대 즐겁고 편안한 생각을 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정한 순간에 찾아와 폭발적으로 고조되는 강한 감정은 보통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촉발된다. 누가 심기를 건드렸다거나 특정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는 홍분의 정도가 더 높아서 주의력을 완전히 빼앗길 정도다. 해당 감정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정은 더 격해지고 그러면 우리의 주의력은 다시 그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된다. 모든 생각이 그 감정 속으로 빠져들고 무엇을 보든 분노하고 흥분하게 된다. 우리는 무의식적 반응상태가 된다. 격화된 감정이 주는 긴장감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강한 감정은 결국 경솔한 행동과 참사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발작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마치 무언가에 빙의된 사람처럼 두번째 뇌인 대뇌변연계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탈취당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최선의 대응책은 나를 그렇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그쪽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고 후회할 행동을 저지르지 않게 예방해야 한다. 더불어 타인의 강한 비이성에 관해서도 알아둔다면 타인과의 충돌을 피하거나 그들을 다시 현실로 데려올 수 있다.

유아기의 심리적 방아쇠

유아기에 우리는 가장 민감하고 취약한 상태였다. 부모와의 관계는 어릴 때일수록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유아기의 모든 강렬한 경험이 마찬가지다. 당시의 여린 모습과 그때 받은 상처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그대로 묻혀 있다. 

그렇게 영향을 준 기억이 혹시 부정적인 것이면, 예컨대 공포나 창피의 기억이라면 억누르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받거나 관심받은 경험처럼 계속해서 다시 겪고 싶은 긍정적감정과 연관된 기억도 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누군가 혹은 어떤 사건을 만나면 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었던 경험의 기억이 되살아날테고, 그러면 그와 관련된 강력한 화학물질이나 호르몬이 분비될 것이다. 

예를 들어 차갑고 자기도취적인 어머니를 두었던 청년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유아기나 아동기에 이 청년은 어머니의 냉담함 때문에 버려진 기분을 경험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 다. 혹은 동생이 태어나 어머니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경우에도 그는 똑같이 버려진 기분을 경험했을 수 있다. 

그런 그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연애를 한다. 여자친구는 그의 특정한 모습이나 행동에 대해 다소 못마땅한 기색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 것도 건강한 연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이 청년에게는 심리적방아쇠가 된다. 여자친구가 자신의 결점을 알아챘으니 이제 곧 자신은 버림받을 거라고 상상한다. 청년은 곧 배신을 당할 거라는 강력한 감정에 휩싸인다.

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출처도 알 수도 없는 통제 범위를 벗어난 감정이다. 청년은 과잉반응을 보이고, 여자친구를 비난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바로 이런 행동이야말로 실제로 그가 두려워했던 결과, 즉 ‘버려짐’으로 이어질 것이다. 청년이 보인 반응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기억에 대한 반응이지, 실제 현실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비이성이 극에 달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본인이나 타인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챌 방법은 행동의 변화를 눈치채는 것이다. 갑자기 아이처럼 굴거나 평소 성격을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 중심에 있는 핵심 감정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이 중심에 있을 수도 있다. 

이때는 마치 어린아이가 몸을 웅크리듯이 그 상황으로부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발을 빼려는 반응을 보인다. 극도의 공포로 갑자기 몸이 아프다면 현장을 떠날 수 있는 편리한 이유가 될 것이다. 중심에 있는 감정은 사랑일 수도 있다. 

희미하게나마 잃어버린 천국을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가까운 부모나 형제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릴지 모른다. 중심 감정은 극도의 불신일 수도 있다.

유아기에 권위를 상징했던 인물, 흔히 아버지가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배신했을 때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이 경우 돌연 반항적인태도의 방아쇠가 자주 당겨질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당면한 현실을 잘못 읽어내고 과거의 무언가에 대한 반응을 내보임으로써 갈등이나 실망,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유아기의 경험을 현재에 되풀이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런 되풀이를 막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무언가 평소보다 통제하기 힘들고 원초적인 감정을 경험한다면 거기 바로 심리적 방아쇠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눈물이 터지거나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과도한 희망을 품는 것등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런 감정의 주술에 걸린 사람은 흔히 목소리 톤이나 보디랭귀지가 평소와 많이 다를 것이다. 마치 실제로 유아기를 다시 사는 것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발작이 이미 진행 중일 때는 최대한 한발짝 떨어져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출처(유아기의 상처)는 무엇이며 그 상처가 나를 어떤 패턴속에 가뒀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이렇게 나 자신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나의 여린 부분을 아는 것은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다.

# 갑작스런 성공이나 실패


갑작스런 성공이나 승리도 때로는 아주 위험할 수 있다. 신경학적으로 봤을 때 뇌에서 분비된 화학물질들이 강력한 흥분이나 에너지를 일으키고 그게 다시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중독이나 광적행동도 흔히 그런 식으로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손쉽게 얻고 나면 정말로 지속될 진짜 성공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기본적 진리조차 망각하기 쉽다.

우리는 갑작스런 성공에서 운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또 그만큼의 돈이나 관심을 획득해 똑같은 황홀함을 느껴 보려고 같은 시도를 계속 반복한다.

우리는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빠진다. 그리고 누군가 경고를 해주려 하면 반발심을 가진다. ‘저 사람이 몰라서 하는 이야기야. 우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성공은 지속될 수 없기에 우리는 틀림없이 추락을 경험하고 이 때의 추락은 더욱더 고통스럽기에 우울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일을 가장 많이 겪는 사람은 도박꾼들이지만 거품 경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갑자기 대중의 이목을 한 몸에 받게 된 사람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뜻밖의 실패나 연속된 실패 역시 비이성적 반응을 야기한다. 우리는 지지리 복도 없는 팔자라며 언제까지나 이 불운이 지속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겁이 많아지고 우물쭈물하게 되어 더 많은 실수나 실패로 이어진다.

이런 경우를 스포츠에 서는 ‘초킹(choking)’이라고 한다. 이전의 실패나 실수가 마음을 짓눌러 얼어붙게 만드는 현상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언제든 뜻밖의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한다면 그 순간이야 말로 한발 물러나 균형을 잡아야 할 때다. 약간의 회의주의나 낙천주의가 필요하다. 갑작스레 성공이 찾아왔거나 큰 관심을 받게 됐다면 한층 더 경계하라. 그 성공이나 관심에는 단단한 기초가 결여되어 있고 치명적 중독성을 갖고 있다. 추락은 언제나 괴로울 것이다.


압박감이 증가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분별있게 절제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중 아무라도 압박감이 증가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가져다 놓아 보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자제력이라는 멋진 가면은 금세 벗겨질 것이다.

갑자기 화를 내며 독설을 퍼붓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고 과민하며 옹졸한 사람이 될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협에 직면하면 뇌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부분이 깨어나 활동하면서 이성적 사고능력을 압도해버린다.

실제로 스트레스나 긴장상황은 사람들이 그동안 주도면밀하게 숨기고 있던 단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을 관찰하면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의 생활에서 스트레스수준이 증가하거나 압박감이 높아지는 것을 눈치 챘을때는 스스로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평소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하거나 예민해지거나 갑자기 이것저것 의심스럽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라.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 최대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라. 이럴 때는 큰 그림을 보는게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아무리 증가해도 나한테서는 아무런 감정도 새어나오지 않을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자신을 계속 의식하고 반추한다면 적어도 후회할 결정을 내리는 일만큼은 막을 수 있다.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
세상에는 누구를 만나는 상대에게 강력한 감정을 촉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촉발하는 감정은 극단적 사랑에서부터 혐오, 신뢰, 불신까지 다양하다.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본다면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나 고대아테네의 장군 알키비아데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프랑스혁명기의 조르주 당통, 미국의 빌클린턴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카리스마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해서 남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중에는 상당히 자기도취적인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극적감정이나 내적고민을 외부로 부사해서 남들까지 혼란에 빠뜨린다. 어떤 사람은 거기서 깊은 매력을 느끼지만,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려면 그들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나타났는데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이 자리하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수도 거리를 유지할 수도 없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조차 우리가 그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집요하게도 사라지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우리는 그들때문에 헌신적 추종자나 철저한 적이 되어 극단적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다. 

매력을느끼든, 혐오를 느끼든, 어느 쪽 극단에 서더라도 당신은 비이성적이 될테니 필사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 때 동원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중 하나는 그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위장을 간파하는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과장된 이미지와 영웅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쓸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흔하디 흔한 인간일 뿐이다. 누구나 가진 똑같은 불안과약점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렇게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내 그들에 대한환상을 깨도록하라.

집단 효과
‘집단편향’이고 강도로 나타나는 경우다.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집단의 일원이 되면 우리는 그전과는 딴판인 사람이 된다. 스포츠 경기장이나 콘서트장 종교나 정치 집회에서 사람들, 그리고 당신자신을 한번 살펴보라. 집단감성에 사로잡힌 자신이 느껴질 것이다.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기쁨이나 슬픔의 눈물도 더 쉽게 나온다. 집단에 속하게 되면 독립적 사고가 촉진되는게 아니라 여기에 속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자극된다. 이런 일은 직장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나 회사리더가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면서 경쟁심과 공격성을 부추기고 대결구도를 만들어간다면 말이다. 집단 효과는 반드시 남들이 그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특정 의견이 소설미디어를 타고 확산될 때 나도 같은 의견(주로 분노처럼)강한 감정을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집단 정서를 자극하는 게 신나고 긍정적인 경우도 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무언 가를 하려고 결집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그자극이 무언가 사악한 감정, 예컨대 상대편에 대한 중오나 과격한 애국주의, 공격성향, 극단적 세계관 같은것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스스로를 단속해서 그 강력한 끌림을 간파해야한다.

가능하다면 집단이라는 상황자체를 회피해 이성적 사고능력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극도의회의적 시각으로 중무장하고 그런순간에 임하는게 최선인 경우도 많다.

집단 효과를 이용해 비이성적 성향을 폭발시키려고 하는선동가 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필시 다음과 같은 장치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은 우선 좌중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공유하는 생각이나 가치등을 이야기해서 다같은 생각을 하고있다는 기분좋은 느낌부터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정의’ 나 ‘진실', '애국심’ 같은 모호하면서도 감정이 잔뜩 실린 어휘들을 동원한다. 특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구체적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고귀한 목표를 들먹인다.

정치선동가나 미디어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고 긴박한 느낌이나 분노를 자아내려고 한다. 사람들의 감정을 계속 고조된 상태로 유지하는 게 그들의 목표다. 우리의 대응책은 간단하다. 이성적 사고능력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독립적사고 능력을 침범하는사람은 절대로 용납하지마라. 그자리에 선동가가 있다고 느껴지면 몇 배 더 경계하고 냉철해져라.

인간 본성의 비이성적 측면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해 둘 말이 있다.  진보와 계몽을 통해 극단적 형태의 비이성이 극복됐을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비이성의 정도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감소했다를 반복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있다.

철학자가 넘쳐나고 과학정신이 싹텄던 페리클레스시대의 황금기가 끝나자 미신과사이비 종교, 편협함이 득세하는 시대가 뒤따랐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이후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순환주기가 계속 반복 되도록 되어 있는 게 인간본성의 일부다.

인간의 비이성은 그저 얼굴과 옷을 바꿔 입을뿐이다. 글자그대로의 마녀사냥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불과 얼마전 인 20 세기만 해도 우리는 스탈린의 공개  재판과 매카시의 미국상원 청문회, 중국문화대혁명 기간의 수많은 박해 사건을 목격했다.

온갖 사이비 종교는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고 개인을 숭배하거나 유명인에 집착하는 일도 계속된다. 기술은 오히려 종교적 열정에 불을 붙인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기에 어디서건 그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설문조사를 보면 21세기에 귀신이나 유령,천사를 믿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났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비이성적 의지는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낼것이고 널리 확산될 새로운 수단을 찾아낼 것이다. 이성을 습득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다. 대대적인 운동이나 기술 진보를통해이룰수있는 일이 아니다. 우월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비이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3단계: 이성적 자아를 끌어낸다

 


이렇게 우리가 비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게 해 주는 사실이 두가지 있다.가장 중요한 첫번째 사실은 역사를 통틀어 모든 문화권에서 높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 덕분에 인간은 진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목표로 삼아야 할 이상향이다.

거기에 포함될 사람들을 몇명만 예로 들어보면 페리클레스, 고대 인도의 통치 자아소카 고대 로마의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중세프랑스의 마그리트 드발루아, 레오나르도다빈치, 찰스다윈, 에이브러햄링컨, 작가 안톤체호프, 인류학자 마거릿미드사업가 워런 버핏 등이다.

이들 모두가 공유하고있는자질이  있다. 자기자신과 자신의  약점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진리와 현실에 집중했으며, 사람들에게 관대했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두 번째는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대단히 이성적인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는 종종 ‘조물주의 사고방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동반된다. 눈앞에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와 마감 시한이 있다.

감히 느껴도 좋은 감정이라고는 흥분과 에너지뿐이다. 혹시라도 다른 감정을 느꼈다가는 집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변한다. 

작업에만 초점을 맞춘다. 생각은 차분해지고 자존심도 앞세우지 않는다. 누가 감정을 자극해서 우리를 방해하거나 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몇 시간 혹은 몇 주가 순식간에 휙 지나가버리는 바로 그런 순간에 이성적 자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성적 자아는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약간의 자각과 연습만 있으면 된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페리클레스, 내면의 아테나를 불러내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전략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철저히 이해하라
감정적 자아는 ‘무지(無知)’를 먹고 산다. 감정적 자아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나를 지배하는지 알아내는 순간, 감정적 자아는 힘을 잃고 길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성적 자아로 가는 첫 걸음은 언제나 내면을 향해야 한다. 감정적 자아가 작동하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그럴 때 드러나는 내 약점들은 무엇인가? 쾌락을 향한 욕구? 남을 괴롭히거나 휘두르려는 욕구? 깊은 불신? 내가 내렸던 의사결정들을 살펴보라. 그중에 특히 비효율적이었던 것들에 주목하라. 반복적인 패턴이 있는가? 그런 행동을 도발한 숨어 있는 불안이 있는가?

이번에는 내 장점을 살펴보라.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렇게 해보면 장기적인 내 관심사에 맞고 내가 가진 여러 능력에 어울리는 목표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남다른 면을 알고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집단편향이나 집단 효과가 작용할 때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뿌리 끝까지 확인하라
당신은 지금 화가 났다.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다음 곰곰이 생각해보라. 혹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로 화가 났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 뒤에 다른 무언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분노의 출처는 아마도 더 불편한 어떤 감정일 것이다. 예컨대 시기심이라든가, 피해망상 같은 것 말이다. 

바로 그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심리적 방아쇠를 찾아서 더 깊이 파보라. 그것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일기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잔인할 만큼 객관적으로 평가해놓은 일기라면 말이다.

이때 가장 위험한 것은 당신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에 대한 환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게 순간적으로는 위안이 될지 몰라도, 길게 보면 당신을 방어적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교훈을 얻거나 더 발전할 수 없게 만든다. 


대응 시간을 늘려라
이 능력을 키우려면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다. 대응이 필요한 사건이나 대화가 발생하면 한 걸음 물러나는 훈련을 하라.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도록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분노의 이메일을 작성한 다음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루 이틀 자면서 생각해보라. 갑작스럽게 어떤 기분, 특히 서운한 마음이 들 때는 전화를 하거나 연락하지 마라. 사람을 채용하거나 일을 맡겠다고 하는 것처럼, 내가 성급한 약속을 하려 한다 싶을 때는 물러나서 하루 정도 시간을 줘라. 감정을 가라앉혀라. 시간은 많이 가질수록 더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그림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연습을 근력 운동처럼 생각하라. 반응하지 않고 더 오래 참을수록 숙고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도 늘어나고, 마음가짐도 더 강건해진다.

 

사람들을 불변의 사실로 받아들여라
사람들과의 교류는 우리를 감정적 소용돌이에 빠뜨리는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남들을 끊임없이 심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대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남들을 바꾸고 싶어 한다. 상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흔히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고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속상해한다. 

그러지 말고 사람을 하나의 현상처럼 대하라. 혜성이나 식물처럼 가치판단의 여지가 없는 대상으로 보라. 그들은 그냥 존재하고, 모두 제각각이고, 삶을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저항하거나 바꾸려 들지 말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하나의 재미난 게임으로 만들어라. 퍼즐을 푸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인간들이 벌이는 희극의 한 장면일 뿐이다. 맞다. 사람들은 비이성적이다. 하지만 당신도 비이성적이다. 인간의 본성을 뿌리 끝까지 철저히 인정하라. 그러면 마음이 진정되고 남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 감정을 타인에게 투영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 균형 잡히고 차분해질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도 늘어날 것이다.

악몽 같은 인간들과 마주쳤을 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극도로 자기도취적인 사람, 수동적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 기타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우리의 이성을 시험에 들게 한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를 한번 보라. 어쩌면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중 가장 지독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성적 인간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그는 식솔이 많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자녀들을 무자비하게 때렸고 어린 체호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사가 된 체호프는 부업으로 글을 썼다. 그는 의사로서 받은 교육을 활용해 인간이라는 동물을 연구했다. 인간을 그토록 비이성적이고 불행하고 위험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체호프는 소설과 희곡을 통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보는 게 엄청난 치유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해보면 최악의 유형에 속하는 인간들조차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모든 사람을, 심지어 그의 아버지까지도 용서할 수 있었다. 

체호프가 사용한 방법은 아무리 뒤틀린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들도 자기 딴에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방식이 비이성적일 뿐이다.

체호프는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내면에 있을 법한 스토리를 상상해봄으로써 그 잔혹하고 공격적인 인간들의 가면을 한 겹 벗겨냈다. 그렇게 해체해놓고 보면 그들 역시 보잘것 없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들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었다. 우리도 사람을 대할 때는 좀 더 작가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아무리 악질이라 해도 말이다.

 


사고와 감정 사이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라
감정을 사고로부터 떼어놓을 수는 없다. 두 가지는 철저하게 서로 얽혀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어쩔 수 없이 더 우위에 있는 요소가 있고, 분명히 남들보다 감정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적절한 배분과 균형이다. 그래야 가장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기수(騎手)와 말(馬).’

여기서 말은 감정이라는 인간의 본성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이 말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힘을 갖고 있지만, 기수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고, 포식자들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끊임없이 말썽거리를 찾아다닌다.

한편 여기서 기수는 ‘생각하는 자아’다. 기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고삐를 쥐고 말을 인도한다. 이 짐승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를 생산적인 무언가로 바꿔놓는다. 둘은 나머지 하나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기수가 없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목적을 가질 수도 없다. 말이 없으면 에너지도 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우위에 있는 것은 말이다. 기수는 힘이 약하다. 반면에 고삐를 지나치게 단단히 죄는 너무 강한 기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말이 질주하도록 놓아주기를 두려워한다. 말과 기수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생각을 한 다음 행동해야 한다. 상황을 최대한 많이 생각해본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뭘 할지 이미 결정을 내렸다면 고삐를 늦추고 모험 정신을 갖고 대담하게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우리는 이 에너지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방향을 정리해줘야 한다. 이성은 바로 그런 것이다.

실제로 그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다면 회의적 태도(기수)와 호기심(말) 사이에 완벽한 균형을 한번 잡아보라. 그럴 때 우리는 나 자신이나 남들의 열정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사람들의 설명이나 소위 ‘증거’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동기가 뭐라고 이야기하건,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를 살핀다. 하지만 이게 지나치면 과감한 생각에 대해 마음을 닫아버리게 될 것이다. 흥미진진한 상상이나 호기심 자체를 외면할 수도 있다.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던 어릴 적 자유분방한 생각을 놓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생각과 신념을 직접 꼼꼼히 확인하고 검증해야 할 엄중한 필요성도 있다. 이 둘은 공존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천재는 그런 균형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이성을 사랑하라
이성으로 가는 길이 고통스럽고 금욕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사실 이성이 가져다주는 힘은 굉장히 만족스럽고 즐겁다.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벼운 쾌락이 아니라 깊이 있는 만족과 기쁨을 준다. 

당신도 살면서 이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어느 프로젝트에 푹 빠져 있을 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이따금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진척이 이뤄지면 가슴터질 듯한 흥분을 맛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가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감정적 자아’를 길들이고 나면 늘 차분하고 명료한 상태가 된다. 

마음 상태가 이렇게 바뀌면 사소한 마찰이나 걱정거리로 고민하는 일도 적어진다. 더 효율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혼란과 소동도 줄어든다. 나 자신을 저 깊은 곳까지 정복했다는 어마어마한 만족을 느끼게 된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겨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늘어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알고 나면 이성의 힘을 키우도록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도 페리클레스가 갔던 길을 따르는 셈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나 여신이 곧 이성이 갖고 있는 여러 실용적 힘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어떤 신보다 아테나를 사랑하고 숭배했다. 더 이상 우리가 아테나를 신으로 모시지는 않는다고 해도 지금 세상에서 이성을 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 힘을 최대한 내면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요약

 

인간 본성의 열쇠 :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I.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

   A. 내 계획이 어그러졌고 아이디어가 반대에 부딪힌 이유를 외부에 찾는다.
   B. 무력감을 강조하는 설명법
   C. 외부로 눈길을 돌리는 반응

 


II. 진실은 다르다

    A. 우리의 비이성적 성향
    B. 금융위기를 통한 비이성적 성향의 예시
    C. 경제 거품의 원인

 


III. 감정의 본성

    A. 감정의 진화
    B. 감정과 인지능력의 분리
    C. 감정의 무의식적 측면

IV. 이성적 vs. 비이성적

 

    A. 이성적인 사람의 특징
    B. 비이성적인 사람의 특징
    C. 자각의 중요성

V. 이성을 위한 과정


    A. 약한 비이성에 대한 자각
    B. 강한 비이성에 대한 이해
    C. 뇌의 사고 부분을 강화하는 전략과 연습

 


VI. 결론


    A.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필요한 3단계 과정
    B. 이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자

 

 

 

 

 

1단계: 내 안의 편향을 자각한다

 

편향에 대한 인식과 이해
    - 편향이란 무엇인가?
    - 편향이 사고 과정과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다양한 종류의 편향


    1. 확증편향
        - 확증편향이란?
        - 계획을 세울 때 확증편향이 발동하는 경우
        -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2. 확신 편향
        - 확신 편향의 특징
        - 리더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확신 편향
        - 확신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

    3. 겉모습 편향
        - 겉모습 편향의 실제적인 영향
        - 후광 효과와 겉모습 편향의 관계
        - 겉모습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

    4. 집단편향
        - 집단편향의 본질
        - 집단편향이 사고에 미치는 영향
        - 집단편향을 이겨내는 방법

    5. 탓하기 편향
        - 탓하기 편향의 원인과 영향
        - 탓하기 편향이 개인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
        - 탓하기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

    6. 우월성 편향
        - 우월성 편향의 특징과 영향
        - 우월성 편향이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
        - 우월성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

결론
    - 편향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성찰과 노력의 중요성
    - 다양한 편향을 극복하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

 

 

 

2단계: 심리적 방아쇠를 확인한다


- 약한 감정과 강한 감정의 차이


  - 약한 감정: 즐거움과 안정을 원함
  - 강한 감정: 외부 요인에 의해 촉발됨

- 강한 감정의 영향
  - 주의력을 빼앗김
  - 생각이 감정에 집중
  - 무의식적 반응 상태로 전이

- 대응책
  - 요소 파악
  - 후회할 행동 예방
  - 타인의 비이성에 대한 이해

 


유아기의 심리적 방아쇠

- 영향력
  - 어릴수록 큰 영향
  - 모든 강렬한 경험이 영향

- 부정적 기억과 긍정적 기억
  - 부정적 기억: 억누름
  - 긍정적 기억: 다시 겪고 싶어함

- 성인으로서의 영향
  - 특정 상황에서 기억이 되살아남
  - 관련된 강력한 화학물질 분비

- 예시
  - 어머니와의 관계로 인한 영향

- 대응책
  - 행동 변화 주시
  - 어린아이처럼 굴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 주시
  - 주요 감정 파악

 


갑작스런 성공이나 실패


- 위험성
  - 뇌 화학물질의 영향
  - 성공적 경험 반복 욕구

- 과대망상적 기분
  - 지속된 성공을 기대
  - 추락 후 우울

대응책
  - 회의주의와 낙천주의 필요
  - 성공과 관심에 대한 경계

 

 


압박감이 증가할 때


- 비이성적 특성
  - 실제 사람의 모습 드러남
  - 약점 노출 가능성

- 대응책
  - 스스로 관찰
  - 거리 유지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


- 특징
  - 카리스마와 자기도취적 형태 존재

- 대응책
  - 과장된 이미지 간파
  - 인간적 모습 찾아내기

집단 효과

- 집단편향의 영향
  - 독립적 사고보다 집단에 속하고 싶어짐

- 주의할 점
  - 집단 효과를 이용하는 선동가 조심
  - 독립적 사고 능력 유지

인간 본성의 비이성적 측면

- 비이성의 지속성
  - 역사를 통한 사례들
  - 현대에도 계속됨

대응책
  - 개인의 이성 습득 필요
  -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비이성 작용 신호

 

 

 

3단계: 이성적 자아를 끌어낸다


- 이성적 자아의 중요성


    - 모든 문화권에서 높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
    - 역사적 인물들의 공통점
        - 자기자신과 자신의 약점을 현실적으로 평가
        - 진리와 현실에 집중
        - 사람들에게 관대함
        -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능력

- 감정을 자극하는 순간


    - 대단히 이성적인 순간을 경험
    - 감정을 뿌리 끝까지 확인
    - 대응 시간을 늘리기
    - 사람들을 불변의 사실로 받아들이기

- 이성적 자아를 끌어내는 방법


    1. 자신을 철저히 이해
        - 감정적 자아의 작동 방식 파악
        - 내 약점과 장점 파악
    2. 감정을 뿌리 끝까지 확인
        - 화가 난 이유 파악
        - 자존심에 주의
    3. 대응 시간을 늘리기
        -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
        -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간을 주기
    4. 사람들을 불변의 사실로 받아들이기
        - 상대를 심판하지 말고 이해하기
        - 상대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
    5. 사고와 감정 사이 균형점 찾기
        - 회의적 태도와 호기심 균형 유지
    6. 이성을 사랑하기
        - 이성적 자아의 힘과 만족

- 결론
    - 이성적 자아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며 만족스럽고 효과적일 수 있다.

 

 

 

 

참고문헌/원글 내용 : https://www.dentalnews1.com/news/articleList.html?page=3&total=67&box_idxno=&sc_sub_section_code=S2N134&view_type=sm /덴탈뉴스  (원글:인간 본성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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